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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편집

전문 편집

※ 이 이야기의 시점은 「새로운 친구 편」 직후입니다.




“후우우….”


맞은 편에 앉은 그 녀석이 담배를 꼬나물고 연기를 내뱉는다. 검은 중절모에 선글라스, 거기에 잿빛 코트까지. 누가 봐도 멋진 녀석이다. 나보다는 못하지만.


“어이. 돈은 준비됐겠지?”


이런이런. 이 녀석 나를 뭘로 보는 거지? 얕보이는 것에 조금 기분은 나빴지만 뭐 좋아. 나는 관대한 남자니까.

준비해놨던 가방을 꼬리로 스윽 밀어보낸다.


“…좋아. 액수는 맞군. 자, 약속했던 물건이다.”


녀석이 건넨 물건을 본다. 그래. 문제 없이 잘 준비했군. 이걸로 내 계획도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겠군.


“……어이 정말로 저지를 건가? 그 일을 벌이면 세상을 구할 수 있겠지만 네가 범인으로 몰릴 거라고.”


아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네녀석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삐융-’”


“나 참, 누가 TV를 켜놓고 나간… 어머 테니돌이야 네가 보고 있었니?”


장 보러 가셨던 핑크스타 아주머니가 돌아와 TV를 껐다.


“…테니테니.”


크읏…! 이제 막 TV속 배우에게 ‘너만이 알아주면 됐다… 나는 세상의 모든 어둠을 짊어지고 사라질 테니.’라고 대답할 때였는데! 아주머니! 왜 하필 그 타이밍에 TV를 끄신 거죠!


“테니테니! 테테니테테니!!”


“미안미안 우리 테니돌이. 이 아줌마가 과자 줄 테니 화 풀려무나.”


“…테니.”


전 과자로 넘어간 게 아닙니다! 아주머니가 악의로 TV를 끈 게 아님을 알기에 화를 푼 거예요! 아, 이 과자 맛있다!


“흠… 중절모에 선글라스는 어디서 구한 거니? 아까 TV에 나온 배우를 따라했니?”


“테니니니니.”


맞아요! 아주머니도 아시죠! 요즘 인기 있는 누아르 시리즈 ‘온 세상에 배신당한 전설 속 킬러는 배신당했음에도 또다시 세계평화를 위해 싸운다’!! 방금 그 장면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처지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옛 동료가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동료는 주인공을 되돌리려 하지만 이미 주인공은 세계를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로 결심한…


“집에서 TV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이 아주머니랑 산책하지 않으련? 친구들에게 우리 귀여운 테니돌이를 자랑하고 싶어~”


“테니테니테니테니테니테니!”


크읏… 어째서 핑크스타 아주머니는 누아르의 멋짐을 이해 못하는 거야! 이 집에 온 지 일주일밖에 안된 내게 엄청 잘해 주시고 사랑도 담뿍 주시는 좋은 분인 건 알아! 하지만 누아르의 멋짐을 이해 못하시다니! 아주머니라면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음~ 미안하지만 테니돌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줌마는 잘 모르겠네. 혼자 산책 갔다 오고 싶은 거니?”


…그래! 아주머니가 하고픈 말은 이거구나! 바깥에서 이 ‘멋’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거야! 친구를 만들라는 거야! 낮에는 블루랑 워터가 학교에 가고 거기에 아이보리까지 유치원에 가서 아무도 없잖아! 아주머니가 집에 계시지만 어디까지나 보호자이시지 친구는 아니셔! 그런 저에게 친구를 만들라는 거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머, 잘 다녀오렴~”


현관에서 나를 배웅해 주시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나, 테니돌이는 친구를 찾는 여행길에 올랐다.




***




‘스윽-’


공원에 도착한 나는 꼬리로 중절모를 비스듬히 쓴다. 이 17.5도의 각도를 유지하는 게 최상의 멋짐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뒤이어 선글라스를 고쳐 쓴다. 이 ‘달칵’하며 멋진 동작을 위해 선글라스를 썼다.

하지만 이 동작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이 동작은 아주 중요한 순간에만 하는 동작이다. 이 ‘멋을 분출하는 행위’를 남발하는 것은 멋에 대한 모독이다.


“흐으음? 자네는 뭐지?”


양복을 쫙 빼입은 청색왜성족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이 녀석! 상당히 멋지다!

드넓은 어깨에 굵은 목, 잡힐 만큼 잡힌 근육은 그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왔는가를 보여준다.

멋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차려 입은 양복은 그의 신사다움을 피력하였는데 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살짝씩 드러나는 은색 손목시계가 그 멋의 절정을 알리었다.

뿐만 아니다. 살짝씩 있는 희끗희끗한 머리털에 눈가와 입가의 잔주름은 중후한 멋을 분출했다.

그러나 가장 멋진 것은… 그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흉터들! 그가 뒷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적을 죽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명예로운 훈장!


“시장님! 조심하십시오! 모자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테니스공이라니… 위험한 생물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주변에 있던 갱들이 보스를 지키기 위해 나를 막아섰다. 이런… 나를 경계하는가? 뭐 나의 이 17.5도 중절모를 보면 누구나 겁에 떨 수밖에 없지.


“아 됐네. 이 생물체에 대한 보고는 받았다네. 버려진 빌딩에 있는 줄 알았건만 산책 나온 공원에서 만났군.”


“앗… 그렇다면 이 기괴한 생물체가 바로 에덴의 열매군요.”


이 나의 정보를 파악했다니 대단하군. 하기야 이렇게나 멋지고 위험하니 가만히 숨을 죽이며 지내도 정체가 새어나가기 마련인가. 그때 눈앞의 강자가 무릎을 꿇고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손을 건네왔다.


“그래. 우리 테니스공 군? 한번쯤은 만나고 싶었다네. 내 이름은 마각. 이 스타시티의 시장이라네.”


“테니테니.”


겉으로는 공직자로 생활하고 있군요. 저의 이름은 테니돌이. 위대한 파인애플의 아들입니다.


“오오 귀엽구나. 꼬리로 악수하는 거니?”


“테니테니.”


악수를 마쳐도 마각은 일어날 기색이 없다. 쭉 나와 눈을 맞춘 채 말을 걸어왔다.


“테니스공 군은 갖고 싶은 게 있나? 이 마각 시장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준비해주마.”


무… 무엇이든?!


“시장님. 무슨 농담을….”


“이 정도는 상관없지 않나. 이런 작고 귀여운 친구야. 사탕 10개를 원할 나이 아닌가!”


“글쎄요… 사탕을 먹을까요?”


무엇이든 좋다 했나? 그렇다면 친구도 되는 거겠지? 이렇게 멋지고 댄디한 남성이라면 분명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집 밖을 나오자마자 이렇게 좋은 친구를 사귀다니! 최고야!


“테니.”


그렇게 생각한 나는 꼬리를 마각에게 들이댔다. 자! 나의 친구가 되어줘!


“…호오? 갖고 싶은 것은 이 마각인가?”


“테니!”


긍정의 의미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나와 눈을 맞추었던 그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나를 내려다보며 기백을 내뿜는다.


“이 마각을… 시장직을 원하는가? 테니스공이여.”


아까까지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무언가 잘못했나?! 어떡하지?!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시장님! 진정하세요!”


“그래. 진정하고 말고. 무한생장생물생성형 생물. 일명 에덴이 이 스타시티를 넘보는 일이 없다면 말이다. 존재만으로도 경계 대상인 에덴이 갑작스레 버려진 빌딩에 정착했다. 에덴은 정착에 그치지 않고 빌딩의 차원을 조작해 외부의 접근을 막는 위험지대를 만들었지. 시민의 접근을 차단하고 안전을 확보하고자 시에서 ‘버려진 빌딩에서는 사건 사고가 난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에덴 본인은 자신의 위험성을 알고 빌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기에 나도 잠자코 있었다.”


어라? 우리 아빠 얘기야? 우리 아빠가 왜 나오는 거야? 설마 나 때문에 우리 아빠까지 위험한 거야?!


“그러나 에덴의 아이. 나아가 에덴이 될지도 모를 그 위험한 존재인 테니스공. 네가 나에게 말했다. 이 마각을… 이 시장직을… 이 도시를 원한다고 말이다. 네 뜻이 곧 너의 창조주의 뜻이라 받아들여도 되는가? 테니스공이여.”


자꾸자꾸 마각의 살기가 늘어난다. 주변의 비서나 경호도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한다. 어떡하지?! 난 단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오해를 사서 화나게 만들었어! 뿐만 아니라 우리 아빠까지 위험해질지 몰라. 이럴 때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했지? 그 ‘멋’의 결정체 같은 주인공은 무엇을 했을까? 상대의 오해를 풀고, 화를 누그러뜨리며 더욱이 멋까지 있는 그런 해결책이… 있다!!


“흐음?”


나는 마각을 가리켰던 꼬리를 거두었다.


“꼬리를 내렸군. 겁을 먹은 건가?”


아니. 나는 겁을 먹은 게 아니야. 당신과 오해를 풀고 친구가 되기 위해서야. 이 내 맘을… 알아줘!


“…! 그 자세는?”


테니돌이의 테니테니 일러스트 01


나는 거두었던 꼬리로 내 모자를 ‘스윽’하고 올려 고쳐 썼다. 이 동작의 의미… 당신이라면 알 거라 믿어!


“그 자세는 설마 인기 TV시리즈 ‘온 세상에 배신당한 전설 속 킬러는 배신당했음에도 또다시 세계평화를 위해 싸운다’에서 자신을 죽이려던 옛 친구를 향해 주인공이 모자를 고쳐 쓰며 ‘나를 죽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것만은 기억해 줘. 나는… 언제까지나 너의 친구다.’라고 대답해 오해를 풀고 서로의 우정을 재확인한 그 명장면의 오마주?!”


“…TENNI.”


“크읏… 미안하구나 테니스공. <파멸의 인도자>라 불리던 이 마각이 너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나아가 너의 부모까지 욕 먹이다니.”


“테니테니.”


괜찮아요. 저도 이전에 실수를 저질러 블루스타를 곤경에 빠뜨렸거든요. 인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호쾌하게 넘어가 주다니… 고맙다! 테니스공이여! 너처럼 멋을 아는 사내와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를 표하마. 그래. 말뿐인 감사로는 택도 없지. 좋아! 이 만남을 기념하여 이 공원을 그대의 이름과 모습을 딴 공원으로 만들겠다!”


“시장님?! 갑자기 무슨 소리를…!”


“어차피 이 오래돼서 이곳저곳 망가진 스타공원을 손보기 위한 현장시찰이었지 않은가! 이왕 공원을 다시 지을 거 마스코트 캐릭터를 내세우는 게 잘못인가?”


“그렇지만 너무 갑자기 결정한 거 아닙니까!”


수행원과 이것저것 말씨름을 하던 마각. 그는 머리를 감싸 매고 전화로 연락을 돌리던 수행원 제쳐두고 내게 손을 건넸다.


“그대, 테니스공이여. 차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마. 나는 이제 시정에 돌아가 보겠다. 언? 가 다시 만나자.”


“테니테니.”


“그리고 이것을 그대에게 주지. 시장쿠폰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우정의 증표지.”


“테니테니 테테니!”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우정의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




“테니테니.”


마각에게 받은 시장쿠폰을 팔랑거리며 도착한 곳은 하이퍼스타마트. 아까 마각과 이야기할 때 아빠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빠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아빠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건강히 잘 계시려나?’


그런데 빈손으로 갈 수 없지. 선물을 사기 위해 이곳 하이퍼스타에 왔다. 내가 사려는 선물은 바로바로 최근 아빠가 맛들리신 한국산 김치! 이전에 내가 훔친 맛있는 한국산 김치는 이곳에서만 유통된다 한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정당하게 재화를 지불해야 한다고 블루스타가 가르쳐 줬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는다. 기다려라! 김치!


“이예~ 어서옵… 테니스공?”


입구에 들어선 나를 보고 누군가 당황한다. 파란색 피부에 흐리멍덩해 보이는 눈 그럼에도 눈썹은 짙어 관록이 있다. 명찰을 보니 하이퍼스타라는 이름이었다.

그래… 이 사람은 분명…


“응? 중절모에 선글라스를 장식한 테니스공? 어… 어라? 살아 움직이네?”


분명 이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다. 이런이런… 이 ‘멋’을 보고 한낱 아르바이트생 하이퍼스타는 어쩔 줄 몰라 하는구나.


“이봐 멍멍이. 가게엔 무슨 일이냐. 장난치려면 썩 나가… 잠깐. 네놈 꼬리에 쥔 그 쿠폰은?”


아르바이트생이 내 꼬리에 있는 시장쿠폰을 보고 표정을 바꾸었다. 이 녀석 설마 마각이 내게 준 우정의 증표를 훔칠 셈인가! 어림도 없다!


“테테테테테!”


“…그 종잇조각을 가지고 있단 건… 그렇군. 따라와라.”


“테니?”


아르바이트생을 따라 도착한 곳은 마트 한 편에 자리잡은 안마의자였다. 위에는 사장실이라고 써 있는데 있는 건 달랑 안마의자 하나다.

하이퍼스타라는 남자는 상품진열대에서 음료수 두 캔을 꺼내와 하나를 내게 건넸다. 아르바이트란 거 원래 일하는 중에 맘대로 상품 까 먹어도 되는 건가? 집에 가면 블루스타에게 물어봐야겠네.


“그 쿠폰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는 건… 나에게 일 의뢰를 하러 온 거군. 그 쿠폰… 마각이 인정한 자들에게만 주는 쿠폰이니 말야. 그 쿠폰을 소유하고 있는 너는 믿을 만하다. 그렇다는 이야기지.”


“테니?”


일 의뢰라기보다는 김치를 사러 왔는데?


“자. 무엇을 원하는 거지? 새로운 유통망의 탐색인가? 혹은 발주했으면 하는 상품이 있나? 일단 뭐든 얘기해 보도록.”


“테니니니 테니.”


원하는 것을 말하라길래 나는 꼬리로 김치코너를 가리켰다.


“저 방향에 있는 것은 음식코너인데… 아아! 그렇군. 이 나와 힘을 합쳐 새 식료품을 만들어 유통하자는 거군!”


“테니…”


아니 나는 김치만 있음 되는데…


“테니스공 모습을 한 강아지. 그래. 그대의 모습은 마스코트로서도 상당히 훌륭하다. 우리 하이퍼스타마트가 독자적으로 공급해 판매하는 애완동물 용품에 그대의 얼굴을 인쇄해 붙인다면 고객들의 눈길을 끄는 건 당연지사. 귀엽고 동글동글한 그러면서도 테니스공이라는 친숙한 모습이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갈 것이고, 테니스공 강아지라는 낯선 요소가 고객들의 눈에 각인되겠지.”


“테니니…”


김치…


“아아! 그래! 그대가 말하고픈 건 이거군! 비단 동물이 먹는 음식에 그칠 게 아닌 사람도 먹을 수 있을 그런 상품을 말하는군!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안심되는 제품이라는 홍보효과와 더불어 동물만이 아닌 사람까지 고객층으로 사로잡으려는군!”


“테니…”


아무래도 내 의견이 닿지 않는 것 같다. 여기서는 그 기술을 쓸 수밖에.


“…! 그 자세는?!”


나는 꼬리로 모자를 고쳐 썼다. 그래. 방금 전 마각한테도 썼던 멋의 결정체! 남자의 기술이다!


“사나이의 바이블 ‘온 세상에 배신당한 전설 속 킬러는 배신당했음에도 또다시 세계평화를 위해 싸운다’에서 ‘이봐. 그보다 더 앞이 있지 않나. 내가 아니라 그 너머를 보아라.’라고 적을 깨우치게 한 주인공의 그 모습?! 자네는 아직 나에게 더 할 말이 있다는 건가? 대체 무엇이지? 자네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픈 건가?”


김치요.


“그대가 가리킨 방향… 그곳 너머에 있는 곳은 장난감매장… !!! 설마 그대는 자기 자신을 본뜬 인형의 개발도 추진하라는 것인가? 자네의 이미지가 들어간 상품을 판매하면 자연스레 자네의 인지도도 높아질 것. 그중에서는 자네의 팬도 생길 것이네. 그 팬들을 겨냥한 상품으로 인형을 만들어 사업을 확장하라는 건가! 엄청난 사업머리군! 이 나도 놀랐다! 그대와 같은 사업의 천재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군! 오늘은 출근하길 잘했어!”


김치…


“좋아! 바로 계약하지!”


혼자 흥분한 아르바이트생을 적당히 상대해주었다. 내 사진을 찍거나 치수를 재거나 뭔지 모를 도안들을 여러 개 들이대길래 맘에 드는 걸로 적당히 골라주었다.

마지막에는 매달 수입의 일정량을 대가로 받는다는 종이에 대충 꼬리도장을 찍었다. 대가로 또 무엇을 원하냐길래 이번에는 제대로 한국산 김치를 가리켜서 받을 수 있었다.

돈을 내려 했는데 괜찮다면서 극구 사양했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선물로 준 거구나! 꽤 시끄럽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친구지만 마각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좋은 사내였다.




***




“테니테니”


아빠께 드릴 선물을 들고 버려진 빌딩에 도착했다. 이제 보니 이곳, 당장이라도 큰 싸움이 날 것 같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적의 첩자와 싸우던 곳도 바로 이런 곳이었다. 주인공의 멋진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아빠가 계시는 꼭대기를 향했다.

이곳저곳 아빠가 차원을 왜곡시킨 포탈 때문에 함정이 많았지만 매일 드나들면서 다 외우기도 했고 몸이 작고 탄성도 좋아 나만의 동선으로 쉽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놀듯 올라가니 어느덧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테니테니!”


“오오! 우리 아들 테니돌이 왔니? 그동안 잘 지냈나?”


아빠 파인애플이 소파에서 일어서 내게 다가와 안아주셨다. 으으으 아빠 얼굴 파인애플 껍질이라 까칠까칠해.


“음? 뭐니 이 모자랑 선글라스는? 보아하니 또 TV드라마에 빠졌나 보구나. 이번에 보는 건 누아르물이니?”


“테니테니”


“오호 그렇구나. 이 아빠도 한번 봐야겠는걸?”


“테니테테니니니”


“오! 아빠에게 선물이라고! 한국산 김치구나! 이게 참 그리웠단 말이지. 고맙구나 우리 아들.”


그간 김치를 못 드셨던 건지 기뻐 보이는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아~ 어서 아빠에게 블루스타네에서 있던 일들이랑 친구 사귄 일을 얘기하고 싶다. 그때


“에덴의 열매군.”


처음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빠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스타족 사내가 있었다. 우람한 체구에 터번을 두른 검은 피부의 남자. 거대한 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이보게 풍검. 지금은 아들이 왔으니 다음에 얘기할 순 없겠나?”


“그럴 순 없소. 오히려 에덴의 열매가 왔으니 더욱 대화를 해야 하지 않겠소?”


“테니?”


에덴의 열매라는 알 수 없는 말은 나를 가리키는 건가? 드라마 속 주인공도 멋진 이명이 있었지만 에덴의 열매라니. 멋이 안 나는걸?


“허허허. 에덴이라니. 난 그저 이 빌딩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고 싶은 과일일 뿐이라네.”


“거짓말 마시오.”


“테니!”


그 직후 풍검이란 사내는 검을 빼 들어 우리 아빠의 목에 갖다댔다. 이게 뭐야?! 무슨 상황이야?! 왜 처음 보는 남자가 아빠한테 칼을 들이대는 거야?!


“씨앗부터 시작해 싹이 자라 꽃이 펴고 성인이 되면 마침내 열매를 맺는 소수종족. 에덴.”


“과일에 짧은 팔다리가 달린 우스꽝스러운 종족일 뿐이지 않나?”


“전설에 따르면 태초의 에덴들은 불사신이라고 하오. 그대의 나이가 몇인지 대답해보시게.”


“허허허. 아직 팔팔한 사십대야.”


“불사신일 뿐만 아니라 특수한 권능까지 지니고 있다 들었소. 차원에 간섭해 이를 비트는 힘으로 이 빌딩의 차원을 왜곡하지 않았소?”


“이 빌딩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괴담까지 있을 정도던데.”


“거기에 덧붙여 태초의 에덴들은 특별한 힘을 지닌 생명체… 에덴의 열매를 맺는 힘도 보유하고 있다 들었소. 자신이 먹은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힘.”


“이런이런. 그건 우리 에덴 종족의 탄생설화에 불과해. 태초의 아홉 별 중 창조의 별님의 권능이 깃들었다나 뭐라나. 어디까지나 신화. 우리 에덴에게 그런 힘은 없어.”


“태초의 에덴들은 왜곡된 차원 속에 갇혀 외로움을 버티지 못했소. 그렇게 자신의 형제와 자손을 늘리고자 과일과 채소를 종류별로 마구 먹었기에 오늘날 에덴들의 모습이 과일과 채소를 본떴다고 하오.”


“허허허. 시조 님께서도 참 외로우셨나보군.”


“그 시조 중 한 명이 바로 당신 아니오?”


이후 침묵이 이어진다. 그 침묵을 깬 것은 풍검이란 사내였다.


“나 풍검은 대외적으로는 검술 연마를 위해 이곳 일대를 장악한 검객이지만 실제로는 그대를 감시하기 위해 스타랜드 정부가 보낸 요원이오. 존재만으로 주변 일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그대를 경우에 따라선 제거하는 것이 이 몸의 임무. 지금 그대가 버려진 빌딩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혼란이 초래했소.”


그의 칼끝이 점점 움직인다.


“그대가 이곳에 머무른 것만으로 빌딩의 차원은 왜곡. 불사와 생명창조의 비밀을 캐내려는 놈들에 벌써 이곳 스타시티를 눈독 들이기 시작. 그 에덴의 열매도 그대와 같은 권능을 가졌을지 모르오. 어린 싹인 지금 제거하는 편이…”


풍검이 칼끝을 내게 겨눈다. 그때


‘파캉’


하고 풍검의 칼이 반토막난다.


“내 아들은 아무 상관없다.”


“…차원을 왜곡해 칼을 반으로 가르는 힘. 역시 그대는 태초의 에덴이구려.”


풍검이 부서진 칼을 아랑곳 않고 아빠에게 겨누었다.


“죽지 않고 생명을 창조해내는 그대를 일컬어 무한생장생물생성형 생물이라고도 부르더구려. 머지않아 그런 그대나 그대의 열매를 노리는 악한들이 무리 지어 올 것이오.”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이곳에 정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이 누구의 출입도 불허하는 함정을 판 일이지”


“그 탓에 되레 적에게 노려지게 됐지만 말이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우리 아빠는 잘못이 없다고! 어떡하면 이 상황을 막을 수 있지?


“결단을 내리시오. 이곳에서 죽거나. 이곳을 떠나거나.”


이럴 때 그 남자였다면… 그 남자였다면!


‘터벅’


내가 한걸음 앞에 나선다.


“공격하려는가! 그렇게 두지 않겠소!”


이후 꼬리로 모자를 고쳐 쓴다.


‘스윽’


이런 나의 모습을 본 풍검은…


“…! 그 모습은…!”


겨누었던 칼을 거둔다.


“…소인이 그대들을 오해하고 있었구려.”


내 의중을 알아채고 소탈한 미소를 짓는 풍검.


“TV시리즈 ‘온 세상에 배신당한 전설 속 킬러는 배신당했음에도 또다시 세계평화를 위해 싸운다’의 한 장면이구려. 주인공이 ‘너는 나라를 위해 싸워라. 그런 너에게 마지막 부탁이다. 언? 가 나와 비슷한 때가 너에게 찾아오면… 그때는 네가 지키는 쪽이 되어라’라며 정부의 말만 믿고 자신을 죽이려는 옛 동료를 깨우치는 장면이었소.”


그래. 풍검이라는 남자도 말이 통하는 사내였다.

…잠깐만. 지금 풍검이 말한 대사와 장면은 TV에 나온 적 없는데? 아냐. 비슷한 장면은 봤어. 이번 주 방영 예고에 나온 장면이야. 하지만 아직 방영되지 않았는데?! 옛 동료가 깨우치는 장면도 처음 들어! 이 남자는 드라마의 전개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테테니?!”


풍검이 실수를 깨닫고 입을 가린다.


“허허. 의도치 않게 스포일러를 했구려. 미안하게 됐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소인의 옛 동료라오. 지금은 은퇴해 드라마 감독을 하고 있지만 말이오.”


뭣?! 그렇다면 그 드라마는 실화 바탕?! 잠깐… 분명 주인공의 옛 동료 중에 검은 피부의 스타족 검객이…


“테니….”


“옛날 생각 난 김에 술이라도 한잔하러 가야겠소.”


‘술’이라는 핑계로 버려진 빌딩에서 물러나는 풍검. 그 이상 아무 말 않고 나갔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등으로 하는 말을 말이다. 우리 아빠 건에 대해서는 윗선에 잘 말해두겠다. 이곳 버려진 빌딩을 악당들로부터 지켜보겠다. 그게 내 옛 동료와 한 ‘약속’이니까. 그리고…


‘기억해주시면 좋겠소. 나라의 빛을 위해 어둠에만 있어야 하는 자들이 있는 것을.‘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테니.”


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인사를 하였다. 선글라스와 중절모를 모두 벗고 풍검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렇게 풍검이 사라지고 버려진 빌딩 꼭대기에 우리 부자만 남았다.


“…아들 잘 둔 덕분에 한차례 위기를 넘겼구나.”


“테니테니.”


“그래그래. 오늘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테니니!”


“하하하. 일주일 동안 쌓인 이야기가 많나보구나. 그래. 옛날처럼 아빠 머리카락 위에 앉아 얘기를 나누자꾸나.”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빠와 그간 있던 일 그리고 오늘 있던 일들을 얘기했다. 아빠도 내가 없던 동안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얘기해주셨다. 아빠가 끓여 준 김치찌개를 오랜만에 같이 먹으며 우리 부자의 밤은 기울어 갔다.


후일 내 이름과 똑같은 공원에 내 모습을 한 분수대가 설치된다, 마트에선 내 이름을 브랜드로 내세운 사료가 판매되고, 나랑 똑같은 인형이 히트를 친다. 그렇게 모인 돈들이 우리 아빠와 블루스타 일가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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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타의 점프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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