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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제의 일곱 제후 1부—악령 편의 다섯 번째 외전소설. 제작이 취소된 블루스타의 점프점프 자아공유자 편 내용 중 일부를 외전소설로 옮긴 것이다. 자아공유자 개개인의 이야기와 설정을 엿볼 수 있다.

2020년 7월 19일, 오탈자 교정, 이미지 삽입, 설정 변경에 따른 전개 수정을 한 개정판이 오롯 편 RM에 동봉되어 출시되었다.

전문 편집

“어 레노바티오 형??”

“오 블하! 블루스타 하이라는 뜻!”

하굣길에 레노바티오 형을 만났다. 잠시 산책 중이셨던 거 같다.

“형 이 주변에 살았어요?”

“응. 몰랐어? 오롯이 얘기 안 해주던?”

“오롯 걔 맨날 자아공유하자 자아공유하자 이런 얘기밖에 안 해요.”

“아하하하.”

그렇다. 오롯이 전학오고 실속 있는 대화를 많이 못 나눈 것 같다. 오롯이 어떤 아이인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오롯을 보며 떠오르는 건 이제 ‘바보’와 ‘자아공유’ 둘밖에 없다.

“형도 정말 고생이실 거 같아요. 그런 애랑 자아공유를 하다니.”

“응 그래? 난 별로. 오히려 오롯에게 고마운걸.”

“엥.”

오롯 그 애에게 고맙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형도 이상해진 걸까.

“야 블루야. 괜찮으면 우리 집 놀러올래?”

“형네 집요?”

“응. 전에 쫓기던 오롯을 도와줬잖아. 감사인사도 할 겸 저녁 쏠게.”

“고기?”

“고기!”

“콜! 좋아요!”

레노바티오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무진장 큰 집 앞에 멈춘다.

“어, 여기가 형 집이에요?”

“아 이 집? 전 주인이랑 내기해서 땄어. 하하하하하! 최고지 않냐? 집을 따왔다고!”

“헐.”

이 형이 내기를 좋아한다곤 했는데, 집까지 딸 정도라니. 여하튼 레노바티오 형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형의 집. 2층에 마당까지 있는 매우 큰 집이다.

“친구들이랑 같이 살고 있어. 몇 명은 일하느라 나갔는데, 아마 한둘은 남아 있을 거야.”

“몇 분이랑 사시는데요?”

“날 포함해서 여섯 명.”

“되게 북적북적하네요.”

현관에 들어섰다. 온갖 신발이 널브러져 있었다. 운동화, 단화, 하이힐, 구두 등등. 엥? 갖신도 있네. 이건 박물관에서나 보던 건데.

“다녀왔어.”

“안녕하세요.”

집에 들어가니 널찌막한 거실에 탁 트인 주방까지. 전형적인 비싼 집 느낌이다.

‘두다다다다다’

2층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난다. 집에 있던 분이 우리를 맞이하시려나.

“어서 와!!!!”

“안녕하세.... 어?”

집에 있던 사람이 오롯??

“어? 오롯??”

“오 비릿스타! 우리 집에 놀러온 거야?”

“네? 우리 집?”

멀뚱멀뚱 레노바티오 형을 바라본다.

“내 친구라고 해서 네가 오해했구나. 정정할게. 여긴 ‘자아공유자가 사는 집’이야.”

“야호! 불륜이 우리 집에 놀러왔다!!”

-레노바티오-

“여기 오렌지주스!”

거실에 앉은 내게 오롯이 냉장고에서 주스를 내왔다. 그러곤 근처의 소파에 착석한다. 군것질거리를 준비한 레노바티오 형도 옆에 앉았다.

“자아공유자들 모두가 한 집에 사는 줄 몰랐네요.”

“원래는 다 따로 살았지. 근데 오롯이 스타랜드로 이사온다는 거야. 집은 어디에 구했냐니까 ‘엥? 집 구해야 돼요?’라는 거 있지?”

“아하하하하. 집 구할 생각을 못했어.”

아니 오롯. 얜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야.

“자아공유자 애들 단체로 난리가 났지. 머리 모자란 애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까.”

“어라? 레노바티오 오빠? 저 안 모자란데요?”

“그때 내가 제안했지. 우리 모두 오롯한테 신세진 것도 있고 하니, 내 집에서 다같이 살자고. 모여 살면 생활비도 아낄 수 있고, 오롯도 돌봐줄 수 있잖아. 다들 OK 하면서 이 집에 모였지.”

“다들 친한가 보네요. 바로 같이 살자고 하고.”

“응 그렇지. 마침 스크랩이라는 친구는 SSC에서 스타랜드로 발령나서 집을 구하던 중이었고. 천리라는 친구는 가족이 없어서 형편이 안 좋았거든. 내 집에서 셋이 모여 살까 하며 의논하던 차에 노숙자 오롯이 등장했던 거지. 자아공유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도 나도 같이 살자 해서 6명이 한 집에 살게 됐어.”

대학교에 가면 친구랑 룸메 맺어서 자취한다는 로망이 있다. 레노바티오 형이 자아공유자 분들과 지내는 걸 보니 조금 부럽다. 아 그러면 이런 것도 있으려나.

“아 그럼 단체 대화방 같은 것도 있겠네요. 거기서 저녁 얘기하면 하교 중인 오롯이 대화 내용 읽고 하이퍼스타마트에 가 장 보고 오거나.”

“물론 단체 대화방은 있어. 근데 오롯은 휴대폰이 없어.”

“어? 그럼 오롯과는 어떻게 얘기한 거예요?”

스타랜드로 이사온다던 오롯의 말을 들었다고 하셨는데, 휴대폰도 없는 오롯이랑 어떻게 연락하신 거지?

“텔레파시.”

“텔레파시요?”

“그래. [자아공유]가 가진 힘 중 하나야. 오롯 얘는 각각의 자아공유자와 텔레파시 채널이 있어. 그래서 개개인과 소통할 수 있지. 녀석이 스타랜드로 올 때도 내게 텔레파시를 보냈어. 스타랜드로 이사한다고.”

자아공유를 하면 오롯과 텔레파시를 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의 텔레파시는 오롯이 실없는 소리를 할 때 쓴다는 거지. 지금도 얘 나한테 ‘팝콘 과자 가져와줘요!!!!’라고 계속 텔레파시 보내고 있어.”

“우물우물 냠냠.”

“야 네가 직접 가져와.”

“넹”

오롯이 과자를 가지러 부엌에 간다. 거실에 둘만 남는다.

“텔레파시 용도가 도대체 뭐예요? 지금처럼 오롯이 헛소리 하는 용도?”

“텔레파시를 통해서 서로 자아공유가 필요할 때 연락해. 자아공유를 하면 서로의 능력을 쓸 수 있거든.”

“아 그런 용도군요.”

능력을 쓸 때마다 연락을 하는 건가. 그러고 보면 레노바티오 형도 능력이 있었나.

“레노바티오 형의 능력은 ‘그 상황에서 가장 운이 좋아지는 것’이었나요?”

“응. 덕분에 어떤 내기에서도 우승할 수 있지.”

라면서 크큭 웃는 레노바티오 형.

“아니 형은 도박하려고 오롯이랑 자아공유 한 거예요?”

“하하하. 그런 건 아니고. 음....”

웃다가 갑자기 말을 머뭇거리는 레노바티오 형.

“블루. 내 직업이 뭐라고 생각해?”

“도박사. 딜러. 사기꾼.”

“에이, 농담도. 스턴트맨이야, 스턴트맨.”

내기를 좋아하길래 카지노에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스턴트맨이라니 의외다. 전에 레노바티오 형이 닌자-도청과 싸울 수 있던 것도 스턴트맨으로서의 운동신경 덕인가.

“난 스릴을 좋아해. 승부를 할 때 오는 그 스릴감도 좋지만, 스턴트 연기를 할 때 오는 그 아슬아슬함도 좋아하거든.”

“위험하지 않아요?”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지. 그걸 몰랐을 때는 정말 어리석은 짓을 했어.”

미소를 띠던 레노바티오 형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당을 보며 얘기한다.

“내 실력만 믿고, 격한 스릴감을 느끼기 위해 스턴트 연기할 때 안전장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 스태프분들이 열심히 챙겨주셔도 난 괜찮다며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지. 그러다 사고가 났어.”

괴로우신 건지 얼굴을 일순 찡그리신다.

“크게 다친 건 아니었어. 그냥 신경만 살짝 손상돼서 왼손에 감각이 사라진 정도였지.”

“네?! 그거 많이 다친 거잖아요!”

“아냐. 내가 다친 건 별거 아니었어.”

한숨을 쉬시고 말을 이어가신다.

“내 사고 때문에 입은 동료들의 피해. 난 그걸 생각하지 않고 스릴만 즐기려 했어. 나 때문에 다친 동료 배우. 안전관리에 소홀했다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선배. 사고라는 안 좋은 여론 때문에 작품을 망친 스태프. 그들이 입은 모든 피해에 비하면 내 왼손이 아픔을 못 느끼는 건 정말 별것 아니야.”

자기 왼손을 만지작거리는 레노바티오 형. 아직도 후유증이 있는 걸까.

“병원에서 정말 괴로웠어. 자살...도 생각했지만, 책임지지 않고 도망치는 거 같아서 그만두었지. 하루하루.... 어떻게 이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가만 생각했어. 그러던 때 오롯을 만난 거야.”

“오롯을요?”

계속 어둡던 형의 표정이 밝아진다.

“사고 기사를 읽고 나를 보러 왔대. 자아공유를 하고 싶다나 뭐라나. 네 맘대로 하라고 말하고 내보냈지. 그때는 웬 초등학생이 나타나서 장난친다 생각했어. 그런데 다음날 기적이 일어난 거야. 이 손에 감각이 돌아왔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론 운이 정말 좋았다고 하시더라고.”

레노바티오 형이 하핫 하고 웃는다.

“나중에 퇴원하고 보니까 저 녀석이 한 [자아공유] 덕이었어. 오롯과 자아공유를 해 얻은 [운수대통]. 그 상황에서 가장 운이 좋아지는 힘. 그 능력이 발휘돼 금방 퇴원할 수 있었지. 하하하. 웃기지 않냐. 네 맘대로 하라고 내쫓은 건데, 오롯 녀석은 날 도와준 거야. 그 바보는 사람 의심할 줄 모르니까.”

오롯이 항상 실없이 얘기하던 자아공유 이야기. 그 실없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이렇게 큰 구원이 될 수 있었다. 마냥 바보라 생각했던 오롯에 대한 내 평가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퇴원하고 며칠 지나서 오롯이 텔레파시를 보내왔지. 아프지 않냬. 아프긴커녕 덕분에 다 나았다고 고맙다고 했지.”

창밖만 보던 레노바티오 형이 날 바라본다.

“오롯과 만난 그날 이후 난 용서를 받는 삶을 걷고 있어. 그걸 위해 스턴트맨 일을 다시 시작했어.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했지. 그렇게 번 돈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께 보냈어.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받고 싶거든. 물론 돈만으로 다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야.”

“어? 그럼 형 생활비는요?”

내 질문에 레노바티오 형이 멋지게 웃어보인다.

“상관없어. 난 도박에서 따낸 돈으로도 이렇게 잘 먹고 잘사니까.”

농담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레노바티오 형. 때마침 오롯이 과자를 들고 돌아온다. 셋이서 사이좋게 과자를 먹는다.

-제니퍼-

“사랑의 별 저 별을 향해~♥ 고백할래 널 좋아해~!”

오롯이 튼 TV화면에서 인기 아이돌 제니퍼 누나가 공연하고 있었다. 외모에 춤에 노래실력까지 다 갖춘 스타랜드 톱 아이돌 제니퍼. 데뷔 후 1년 넘게 무명아이돌이었지만 지금 부르는 그녀의 대표곡 ‘별노래’가 대히트를 치면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 후 2년 간 꾸준히 히트곡을 내면서 명실공히 스타랜드 대표 아이돌로 자리매김했다.

“오 제니퍼 언니 노래한다.”

오롯도 제니퍼 누나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그럼그럼 우리 누님을 모르는 사람이 스타랜드에 있을 리 없지.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제니퍼 누나 팬카페 우수회원이다. 별노래 발표로 톱스타가 되기 전 곡인 끝노래 때부터 좋아했는데 그 때문인지 지금 유명해진 제니퍼 누나를 보면 괜스레 내가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스타를 알아보았다는 뿌듯함이 든다. 한편 공연이 끝난 제니퍼 누나가 관중께 인사드리고 있었다. 매번 공연이 끝날 때마다 벅찬 듯 감사를 드리는 저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 생각한다. TV 공연이 끝나고 광고시간. 오롯이 내게 묻는다.

“불륜도 제니퍼 언니 좋아해?”

“그럼! 내가 저 누나 팬이라고! 나 모닝콜도 제니퍼 누나 노래야.”

“오 잘됐다! 그럼 둘이 한번 만나봐!”

“??”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오롯이 빛나더니 오롯 대신 다른 누군가가 서 있었다. 어? 어어어??????

“어머 안녕. 네가 오롯 친구?”

어어어어어????????

“반가워. 나 제니퍼라고 해. 오롯의 자아공유자야.”

“네?!?! 제니퍼 누나가 자아공유자!?!?!?”

“와 정말로 내가 보이는구나.”

저번 레노바티오 형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절대영역] 덕에 자아공유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제니퍼 누나도 놀라는 눈치다.

“아 내가 누군지 모를 테니 자기소개 해도 돼? 난 말이지….”

“누나를 어떻게 모릅니까! 스타랜드 아니 스타베리아 최고의 아이돌인데!”

“앗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이야 되게 부끄러운걸.”

제니퍼 누나가 꼬리까지 흔드시며 쑥스러워하신다. 꼬리별족인 제니퍼 누나는 꼬리가 달리셨는데 혜성꼬리를 닮은 그 꼬리는 무지 아름답다. 와와와 내 눈 앞에 진짜 제니퍼 누나가 꼬리를 흔들며 서 있다.

“저… 죄송하지만 악수해도 되나요?”

“그럼! 안 될 게 있나?”

우와!! 제니퍼 누나가 먼저 손을 건네셨다. 덜덜 떨면서 누나의 손을 잡는다. 오아 실화냐. 나 지금 톱스타 제니퍼 누나와 악수했다.

“내가 보기엔 오롯과 손잡고 기뻐하는 거로 보인다만.”

옆에서 흘깃 쳐다보던 레노바티오 형이 한소리 거든다. [절대영역]인 나는 아무튼 제니퍼 누나로 보이므로 상관없다.

“우와 이렇게 좋아해주다니 고마운걸.”

“당연하죠! 전 끝노래 때부터 팬이었는걸요!”

“어 진짜? 그때부터 내 노래를 들어준 거야? 고마운데.”

어라. 왠지 제니퍼 누나가 조금 부자연스럽게 웃으신다.

“그래서. 공연 중에 자아공유해도 되냐?”

옆에 있던 레노바티오 형이 묻는다.

“응. 쉬는 시간이거든. 오롯이 텔레파시로 자기 친구 왔다고 저녁 같이 먹쟤는 거야. 알았다고 했더니 자기 친구랑 한번 만나보겠냬. 근데 뭐….”

“자아공유해도 제니퍼 너로 뒤바뀐 건 모를 테니 안 하겠다고 했는데, 오롯이 너한테 블루스타는 자아공유해도 바뀐 모습이 보이니 괜찮다고 했구먼.”

“응 맞아. 정말인가 궁금해서 자아공유 해 봤는데 정말로 날 볼 수 있구나.”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보니 무지 친해 보인다. 어? 잠깐만.

“아까 레노바티오 형이 말씀하셨죠? 자아공유자분들과 동거한다고. 설마…?”

“어. 맞아. 얘도 여기 살아.”

“제니퍼 누나께서 우리 동네에?!”

제니퍼 누나는 뭐가 그리 신기하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다. 본인이야 그러시겠지만 팬인 나는 깜짝 놀랄밖에.

“공연장에서 여기까지는 멀어서 차로 오가는 건 불편하지만, 내 힘을 쓰면 샤샥 하고 집을 왔다갔다 할 수 있거든. 실은 지금도 공간이동으로 오려 했는데 자아공유해도 모습이 보인다는 게 신기해서 이렇게 와 봤어.”

“어? 제니퍼 누나도 신기한 능력을 쓰나요?”

“그럼. 자아공유자들은 다들 하나씩 지니고 있어. 난 [오방재가]라고 해서 공간을 재단할 수 있어. 꿰메고 잇고 찢을 수 있지.”

다른 자아공유자들도 각기 특수한 힘을 지닐 수 있구나. 그중 제니퍼 누나는 공간계의 힘이었다.

“예를 들면 짜잔. 이 대바늘을 써서 내 방에 다녀올게.”

제니퍼 누나가 대바늘을 소환하더니 허공을 기워내듯 바느질하신다. 그랬더니 어라? 허공에 포탈 같은 게 생기며 누군가의 방이 보인다. 와 이게 제니퍼 누나의 능력이구나. 자아공유함으로써 발현되는 공간에 바느질하는 힘.

“짠. 내 방이야. 한번 가 볼래?”

“네!!!!!!!!”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 나도 갈까?”

“레노 너 오기만 해. 죽인다.”

“앗…. 알았어요….”

놀라 주춤하는 레노바티오 형. 제니퍼 누나의 방엔 나와 누나만 갔다. 방에 도착하고 누나가 포탈에 꿰인 실을 뽑아내자 포탈이 닫힌다.

“제니퍼 누나랑 어울리는 힘은 아닌 거 같네요?”

“그렇지? 근데 그건 또 아니다?”

“네?”

제니퍼 누나가 웃는다.

“한번 봐봐. 끝노래를 좋아해준 우리 팬님을 향한 작은 서비스야.”

제니퍼 누나의 방을 둘러본다. 단조롭고 밝은 목재 가구들로 꾸민 방이다. 의상실이나 연습실은 다른 건물에 있는 건지 레노 형의 집에 있는 누나의 방은 자고 쉬는 용도의 방 같다. 책장에는 제니퍼 누나의 데뷔 앨범부터 최신 앨범까지 쫙 나열돼 있다. 벽에는 제니퍼 누나의 포스터가 잔뜩 있다. 그중에서 당연 눈에 띈 건 끝노래 포스터다. 칼 같은 거로 찢은 건지 포스터가 넝마짝이 되어 있다.

“어? 왜 저 포스터는….”

“아아 저거?”

제니퍼 누나의 꼬리가 바닥을 휘휘 쓴다. 뭔가 말을 꺼내기 힘든 거 같다.

“너라면 알지? 끝노래 발표 후 1년 넘게 아무 활동 없다가 별노래로 갑자기 뜬 거.”

당연히 알고 있다. 끝노래를 듣고 팬이 돼 제니퍼라는 아이돌에 대해 찾아봤지만 끝노래 발표 이후로 아무 활동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별노래로 인기가 급부상한 것이다.

“끝노래도 노래만 발표하셨지 따로 공연을 하신 건 없죠?”

“와 잘 아네. 맞아. 그래서 네가 더 고마운 거야.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 같던 그 노래로 내 팬이 되어주었다는 게.”

잠시 조용해지고는

“그리고 또 고마운 거야. 그 노래를 듣고 날 찾아와 구원해 준 오롯이라는 아이가.”

“네?”

“내가 왜 가수 활동을 쉬었는지 알아?”

“어… 수입이 없어서?”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거든.”

“…네?”

처음 듣는다. 제니퍼 누나의 사고라니. 다쳤단 이야기는 한번도 못 들어봤는데.

“사고 이후 정말… 비통하더라. 아이돌이 돼서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길거리에서 내 노래가 들려야 돈이 벌린대. 처음 팬이 생기고 그분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는데 돈을 벌려면 더 많은 팬이 ‘필요’하대. 하고 싶은 일 꿈꿔온 일을 그렇게 돈으로 환산하며 사는 게 난 정말 싫었어. 고민했지. 이게 정말 내가 꿈꿔온 삶이 맞나? 하고 말이야.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아이돌 활동을 대충하게 됐어.”

제니퍼 누나가 감정이 북받혀오르는지 말에 슬픔이 느껴진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삶에 회의를 느꼈지. 그런데 사고가 나서 걷지 못하고 아이돌로 활동하지 못하게 됐을 때. 그때가 돼서야 깨달았어.”

그리곤 눈물을 흘리며

“나… 정말로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나랑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분들과… 이야기하는 게… 정말 행복했는데…. 왜 난 그동안 열심히 안 한 걸까….”

그렇게 슬픔을 뱉어내신다.

“……그때 나 혼자 만들어 발표한 게 끝노래야. 내 노래인생의 끝. 감사할 줄 모르고 오만방자하던 나의 끝을 부른 노래지. 이제 알았지? 끝노래 발표 이후 1년 간 활동이 없던 게 아니라 못한 거야. 아이돌로서 활동하지 못하게 됐으니까.”

“죄송해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아냐. 끝노래를 들어주고 내 팬이 되어주었다는 게 난 무지 기쁜걸. 내 모든 감정을 담아 울며 노래한 곡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 생각하니까 기뻐. 너는 물론 오롯에게도.”

“오롯?”

생각지도 못한 데서 오롯의 이름이 나왔다.

“병원에 갔는데 웬 여자애가 달려오더니 사인해달라는 거야. 날 아냐고 했더니 끝노래 듣고 팬이 됐다더라. 고맙다고 했지. 사인은 안 한 지 하도 돼서 내 사인을 까먹었어. 그래서 내가 머뭇거리는데 그 애가 말하는 거야. 사인하기 힘드시면 부탁 하나만 들어달래. 사진촬영인가 싶어서 좋다고 했지. 그랬더니 다시 무대 위에서 노래해달라는 거야. 그리고 그 무대에서 꼭 끝노래를 불러달래. 이 아이는 내가 더 이상 못 걷는 걸 모르고 순진하게 부탁한 거구나 싶었지. 알았다고 했어. 그리곤 바로 무대로 가자는 거야. 병원 야외 행사장에서 하쟤. 난 못 걸어서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내가 일어서더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수십 번 주저앉았는데 내가… 걸을 수 있더라고. 울면서 웃으며 일어섰다 주저앉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어. 그리고 노래했지. 무지 고맙고 또 슬픈데 기쁜 채로 제니퍼가 병원 식구들 앞에서 데뷔 무대를 치렀지.”

눈물 흘리던 제니퍼 누나의 얼굴엔 이제 미소가 가득하다.

“오롯이 자아공유로 내게 힘을 준 거였어. 공간을 왜곡해서 끊어진 내 허리신경을 이어준 거였어. 자아공유자들은 오롯과 자아공유할 때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자아공유하고 있지 않을 때도 조금은 힘을 쓸 수 있거든. 내가 지금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야. 자아공유하지 않을 때에도 미약하게나마 힘을 쓸 수 있기에 무대 위에서 열심히 노래할 수 있던 거지.”

눈물을 닦아낸 제니퍼 누나.

“그래서 오롯 이 아이에겐 뭐든지 다해주고 싶어. 내 끝노래를 시작의 노래로 만들어준 나의 여신님. 네가 끝노래로 내 팬이 되었다 했을 때 톱스타 제니퍼를 있게 해준 오롯이 생각나서 구구절절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왠지 미안.”

“아녜요. 좋아하는 아이돌과 얘기하다니 전 영광인걸요.”

“헤헤. 너도 오롯처럼 착한 애구나. 아 나 슬슬 공연하러 가야 되거든. 이따 저녁 먹을 땐 포탈 타고 올게. 마지막으로 너만 괜찮으면 사진 찍을래?”

“앗!! 부탁드립니다!!”

제니퍼 누나가 포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무대 대기실에 놔둔 자기 휴대전화 같다. 그걸로 투샷을 찍고 내게 손인사를 하며 자아공유를 해제하셨다.

“엇? 보라스타. 제니퍼 언니랑 얘기 잘 나눴어?”

“응…. 야 오롯아.”

“왜??”

“너 되게 좋은 애구나.”

“뭐야? 이제 알았어??”

의기양양해하는 오롯을 두고 거실로 내려간다. TV에서는 제니퍼 누나의 무대가 다시 시작되려 한다.

“아하핫 뭐야. 내가 아니라 오롯이 찍혔네.”

자아공유한 채로 사진을 찍어서 그런가 사진에는 내가 아니라 오롯이 블루스타 군과 함께 있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할까.”

이 행복한 삶을 다시 느끼게 해준 고마운 그 아이를 위해.

“여러분! 잘 쉬셨나요? 이제 2부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준 블루스타 군을 위해.

“첫 곡은 끝노래로 끊어볼게요!”

“그럼 다녀올게.”

“집 잘 보고 있어 불륜스타!!”

하이퍼스타마트로 레노바티오 형과 오롯이 저녁 거리를 사러 나갔다. 친구 집에 놀러와서 혼자 있는 상황이 당황스럽긴 한데…. TV라도 볼까.

‘철컥 덜커덩’

??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벌써 돌아온 건 아닐 거고 두고 간 물건이라도 있는 걸까.

“형? 오롯? 지갑이라도 두고 나갔어요?”

“…누구야?”

현관에 있는 건 처음 보는 누나였다. 앙증맞게 모아 넘긴 앞머리. 적갈색 피부색에 작고 날카로운 눈. 눈 주위에 난 돌기 같은  검은 점. 가늘고 길게 뻗은 천체표면 피부. 한복 느낌의 복장. 그리고 무엇보다 독특한 건.

“혹시 도둑이야?”

그녀의 몸을 빙 둘러싼 흰 고리. 그 매끄럽고 아름다운 고리족의 상징이었다.

-천리-

“안녕하세요. 천리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블루스타입니다. 오롯의 친구예요.”

“그렇군요.”

“….”

“….”

잠깐의 대화 뒤 적막이 흐른다. 어색하다. 오롯의 텔레파시 덕에 도둑이란 오해는 풀었지만, 천리 씨는 크게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다.

“천리 씨도 여기 사시나요?”

“네.”

“아 그럼 오롯의 자아공유자군요!”

“그렇죠.”

“….”

“….”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원래 말수가 적으신 편인가? 어떤 화제를 꺼내면 좋을까 생각하며 천리 씨를 바라본다. 볼 때마다 흰 고리가 눈에 자꾸 띈다. 고리족을 본 건 처음이다. 몸을 한바퀴 감싸는 고리를 지니고 있는 게 고리족의 특징인데, 이 고리가 꽤나 신축성이 뛰어나서 고무밴드처럼 몸 원하는 곳에 걸 수 있다. 현관에서 만난 천리 씨는 어깨부터 골반까지 대각선으로 고리를 감으셨는데, 지금은 소파에 앉기 편하게 고리를 왼팔에 거셨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나요.”

“아! 죄송해요. 고리가 이뻐서.”

“그렇군요.”

“….”

“….”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그리고 침묵. 천리 씨는 이 조용한 분위기를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친해지고 싶은데.

“째액-!”

그때 새가 지저귀더니 창가에서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돌이버드였다. 천리 씨가 덤덤하게 창가로 가 창문을 열었다. 돌이버드가 집 안에 들어와 천리 씨의 어깨에 앉았다.

“이 새, 오롯이 기르는 새예요.”

창문을 닫으며 천리 씨가 말씀하셨다.

“전에 한 번 봤어요. 오롯이 소개해줬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이 새가 오롯의 위성이란 것도 아시겠네요.”

“위성?”

어깨에 앉은 돌이버드에게 간식을 주던 천리 씨가 눈을 깜빡이신다.

“단 한 명의 곁을 평생 맴도는 생물들요. 그들로부터 생명에 필요한 에너지를 받아 살아가죠. 그 대가로 자기가 지닌 독특한 힘을 공유하면서요.”

처음 듣는다. 들어 보면 우리 집 3돌이들과 비슷하긴 한데.

“쉽게 말하면 오롯의 기생충이에요.”

천리 씨의 매우 적나라한 덧붙임 설명.

“어, 그럼 돌이버드가 지닌 신기한 힘은 뭐죠?”

“텔레파시예요.”

“어라? 다들 그거 자아공유가 지닌 힘이라고 하시던데?”

“완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돌이버드가 전파국 역할을 해주는 덕에 가능한 거예요.”

간식을 다 먹은 돌이버드가 천리 씨의 뺨에 얼굴을 부빈다. 그러고는 문 밖으로 날아간다.

“오롯 방에 있는 자기 집에 가나 보네요.”

천리 씨는 살짝 아쉬운 듯 돌이버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본다.

“….”

“….”

“저기 천리 씨도 자아공유자죠? 그럼 오롯한테 무언가 힘을 받은 건가요?”

천리 씨도 자아공유자라면 무언가 능력이 있는 걸까?

“네. [삼형제별]이에요.‘천리안’,‘순간이동’,‘고리화살’을 쓸 수 있어요.”

“????”

능력이 3개라는 건가? 아니면 3개를 쓸 수 있는 하나의 능력일까.

“천리안은 뭔지 아실 거예요. 멀리 있는 걸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죠. 순간이동은 좀 독특한데요. 여기 제 허리춤에 메단 이 방석에 앉으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요. 단 제 눈에 보이는 곳이 이동 범위 한계예요. 고리화살은… 보여드리는 게 빠를 거 같네요.”

천리 씨가 팔에 걸어놓았던 고리를 쫙쫙 늘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어라? 고리의 절반이 시위가 되더니 점점 활의 형상을 갖춰간다.

“고리족의 고리가 이런 거였어요?!”

“아뇨. 오롯과 자아공유해서 얻은 힘이에요. 자아공유하지 않은 현재 상태론 이렇게 활 모양을 내는 게 고작이에요. 실제 자아공유를 하면 화살도 쏠 수 있어요.”

“우와 진짜 신기한 악령이네요.”

“네.”

“….”

“….”

화제가 끝나고 다시 찾아온 조용함. 서로 말 없이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다 천리 씨가 입을 연다.

“블루스타 군은 혹시 시한부인가요?”

“???????????????”

“빨간 정도를 보아 하니 어림잡아 20년 정도 남았나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 걸까. 천리 씨 나름의 농담인가? 아니면 진지하게 내 건강을 걱정하시는 건가? 아니 시한부냐니 그건 무슨 안부 확인 인사야?

“죄송해요. 설명이 부족했네요.”

내 혼란을 의식한 듯 천리 씨가 부연 설명을 한다.

“저는 어떤 사람이 죽을지 알 수 있어요. 죽음이 가까워진 사람일수록 빨갛게 보이거든요. 대부분은 병이나 노환으로 죽을 사람들이 빨갛게 보입니다.”

“그 말은 지금 제가 빨갛게 보인다는?”

“네.”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어라? 나 병원 가야 되는 거야?

“어떡하지? 아 그렇지만 한 달 전 학교서 건강검진 했을 때 별 문제 없다고 했는데? 그새 큰 병에 걸린 건가?!”

“…. 병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거나?”

“엥?”

“빨갛게 보이는 건 다른 경우도 있어요. 차에 치이기 직전의 사람은 순간 빨갛게 보입니다.

그 외에는 누군가 강력한 살의를 품고 있어서 죽음이 확실시된 경우예요.“

차갑게 나를 응시하는 천리 씨.

“건강에 문제는 없고, 더구나 20년 뒤에 예정된 사고사라니 가능성이 너무 낮네요. 가장 그럴듯한 건 20년 뒤 살해당한다는 건데.”

20년이면…. 분명 그때의 미래?

“하지만 20년 뒤에 살해라니 이것도 말이 안 되네요. 여하튼 앞으로 몸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별다른 악의를 갖고 말하신 건 아닐 거다. 그저 보이기 떄문에 나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시겠지.

‘20년 뒤에…. 죽는다고 하면….’

‘띵~동~’

“야호~!! 문 열어줘~!! 양손에 짐이 한가득이라 문을 못열엉!!!”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 오롯과 레노 형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뛰어오신 건가?”

레노바티오 형과 오롯이 뛰어오기라도 한 걸까. 하이퍼스타마트까지 갔다오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덕분에 난 천리 씨와 단 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지만 말이다.

“퓨처를 썼거든!”

“퓨처?”

퓨처라면 나도 겪은 적 있다. 오롯과 처음 만난 날 오롯이 퓨처를 썼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하교 시간이질 않나, 뛰어가는데 갑자기 도시 한복판으로 순간이동하질 않나-미래에 내가 있을 장소로 보냈다고 했다- 이래저래 이상한 능력이다.

“응. 퓨처를 쓰면 시간을 아껴서 슉슉 이동할 수 있어.”

정말 그런 능력일까. 미래에 있을 장소라든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일단 저희는 환영파티 준비를 할까요?”

천리 씨가 레노바티오 형과 오롯에게 말한다.

“그래. 블루는 우리 집 구조나 물건 위치 모를 테니 저녁 준비 맡기기도 뭐하고…. 아 괜찮다면 마중나가줄 수 있어? 오늘 자아공유자 중 한 명이 입주하거든.”

“아 오늘요?”

“응. 오늘 이 파티는 그 친구까지 6명의 자아공유자가 입주한 걸 기념하는 파티거든. 대부분의 이삿짐은 방에 뒀는데. 몇몇 짐은 본인이 들고 오기로 했거든. 혼자 들고 오가는 무거울 테니 가서 도와줄 수 있어?”

요 앞 10분 정도 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굳이 오롯에게 부탁해 퓨처를 쓸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기에 산책할 겸 혼자 걸어가기로 했다.

-스크랩-

“안녕!!! 너구나 마중오기로 한 사람이!! 하하하하 오롯이 자꾸 텔레파시를 보내서 누가 오나 기대했거든. 만나서 반가워 난 S-crap이라고 해. 스크랩!!!!”

“안녕하세요. 블루스타예요. 되게 활기차신 분이네요.”

스크랩은 매우 사교성 높고 활발한 사람이었다. 천리 씨와 마주한 직후라 대조된 건지 내가 여태 만난 사람 중 제일 시끌벅적한 분 같았다. 아까까지 무언가 작업을 한 것인지 복장이 독특했다. 실험용 장갑에 가운 작업화 그리고 고글까지. 고글에 귀여운 웃는 얼굴이 달린 게 매력 요소였다.

“어라? 꼬리가 달리셨네요. 2개나.”

이 형도 제니퍼 누나처럼 꼬리별족인 걸까.

“이거? 붙였어. 귀엽지??”

라며 자랑하듯 엉덩이를 흔드는 스크랩 형. 장난기가 가득했다.

“너 말야 마우스 알아?”

“네 같은 학교 후배인데요? 어떻게 아세요??”

“내가 걔 형이거든!!!”

마우스가 SSC출신이고 삼남매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근데 그 형이 이분일 줄이야.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형제라는 말이 밑겨지지 않는다.

“동생한테 얘기 자주 들었어. 잘 챙겨줘서 고마워.”

“아뇨 마우스가 제 동생과도 잘 지내줘서 저야말로 고맙죠.”

“크으으으!! 너 되게 착하구나!!”

“마우스의 형이라는 건 스크랩 형도 SSC 사람인가요?”

“응. SSC의 한 기업에서 개발팀 연구원이었는데 이번에 스타시티에 있는 회사 지부로 근무지가 바뀌었어! 그래서 레노 네 집으로 이사온 거야.”

스크랩 형의 짐을 보니 무언가 연구에 쓰일 법한 것들도 보였다. 아마 이사 직전까지 일하시느라 미처 이삿짐에 넣지 못한 짐으로 보인다.

“어디 회사인가요?”

“마우스에게 못 들었어? 콰이퍼라고 첨단기술 연구하는 데야.”

“콰이퍼라면 되게 큰 기업 아니에요??? SSC는 물론 스타베리아를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대기업인데???”

“에이 콰이퍼는 대단하지만 난 별것 아냐. 나는 그곳 임원분 아들이라 낙하산 인사인걸.”

낙하산이라는 말로 겸손을 표하시는 건지 아니면 낙하산이란 말을 당당히 해도 상관없는 정도로 유능하신지 잘 모르겠으나 이 형이 평범한 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여튼 오롯한테 들었는데 자아공유자들이랑 만났다매. 이야 자아공유자가 아닌데도 자아공유의 비밀을 공유하다니. 너 오롯이랑 진짜 친한가보다!”

“아마 오롯이 자아공유 하려고 저한테 영업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요.”

“에이! 자아공유하지도 않았는데 막 알려주진 않아!! 너랑 뭔가 있단 거겠지!! 예를 들면 좋아한다거나?”

“형 때립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스크랩 형의 짐을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돌아가던 중 퓨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말이죠. 오롯이 퓨처를 써서 금세 마트에 다녀왔어요. 천리 씨 장난에 잔뜩 쫄아서 어떡하지 했는데 타이밍 좋게 와서 다행이었죠.”

“응?? 퓨처라니??? 그거 제니퍼의 [오방재가] 아니야??”

“네?”

퓨처는 오롯의 능력인데 무슨 말씀이신 거지.

“뭐 오롯이 아직도 그걸 진짜 퓨처라는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오롯의 친구인 넌 알아야 될 거 같아서 얘기해줄게.”

스크랩 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퓨처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퓨처는 사실 오롯이 지닌 자아공유의 힘 중 2개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퓨처의 사용은 두 개로 나뉘는데 ‘미래 시점에 내가 있을 공간을 현재 시점에 가는 것’과 ‘미래 시점으로 가는 것’이 그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방금 오롯이 마트를 빨리 다녀올 때 쓴 방법이다. 가까운 미래에 오롯은 마트앞 그리고 집앞에 있을 테니 그 시점으로 이동한 것. 내가 달리다가 갑자기 시내로 내던져진 것도 여기 해당한다. 두 번째 경우는 오롯과 처음 만난 날 오롯이 순식간에 하교시간으로 시간이동을 한 것이 해당한다.

“이 두 종류의 퓨처는 사실 자아공유자 중 제니퍼와 노르망디의 악령을 쓴 거야.”

미래에 있을 공간으로 이동한 건 제니퍼 누나의 [오방재가]로 포탈을 탔을 뿐이고 미래 시간으로 시간여행한 건 노르망디 씨의 [절대왕정]으로 미래로 왔다고 믿을 뿐이란 거다. 즉 오롯은 퓨처라 생각하고 쓰는 능력이지만 실은 자아공유자 두 사람의 힘이라는 것.

“오롯이 어떻게 자아공유자들의 힘을 전부 쓸 수 있는진 모르겠어. 그것이 [자아공유]라는 악령의 고유한 힘인지 또는 악령이란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정 개념이 있는지 말야.”

스크랩 형이 혼잣말하듯 내뱉은 악령이니 뭐니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즉 결론은 오롯이 쓰는 퓨처란 것의 본질은 이러하니 네가 오해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음 하지만 이상한데요? 레노바티오 형이 그랬거든요. 저한텐 자아공유자의 힘이 안 먹힌다고….”

“맞다. 그랬지. 음…. 하지만 이상한걸. 실제로 너한테는 악령이 적용됐잖아. 아직 규명하지 못한 네 악령의 특징이 있는 건지 아니면 네 악령이 지닌 허점이 있는 건지…. 홀랜드 교수님과 얘기하면서 좀 더 조사해봐야겠는걸.”

스크랩 형이 집중해서 혼자 중얼댄다. 생각이 정리되신 건지 화제를 이어가셨다.

“그래. 그렇게 퓨처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들 자아공유자의 힘을 쓰는데 정작 내 걸 쓰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아직 오롯이 힘을 다루는 데 미숙한 거려나.”

“스크랩 형은 무슨 능력이 있나요?”

“난 [붙여넣기]라고 해서 스캔한 대상을 복제할 수 있어. 보여줄게. 자 저기 지나가는 이쁜 누나의 원피스를 스캔해볼게.”

세 손가락을 펴서 지나가던 누나의 옷을 지이잉 스캔하듯 위에서 아래로 훑으신다. 그러곤 이윽고.

“?????”

스크랩 형이 아까 누나가 입던 것과 똑같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정말로 옷을 복제했구나

“형 역겨우니까 벗어요.”

“야!!! 보여달라매!!!!”

“원피스 입은 스크랩은 주문한 적 없는데요.”

“에이 알았어 알았어!!”

스크랩 형이 볼 맨 소리를 내곤 원래대로 돌아오셨다.

“그나저나 유용한 능력이네요. 이래저래 쓸모가 많을 거 같아요.”

“그렇지. 윈도우쇼핑을 하다가 저거 괜찮은데 싶으면 곧바로 스캔해서 써보거든. 쓸데없는 지출을 안 해서 너무 좋아!!”

이건 절도라고 해야 될지 불법복제라고 해야 될지. 상당히 애매하다.

“그렇다고 해서 막 스캔할 수 있는 건 아냐. 무생물에 직접 눈앞에 있는 거만 돼. 모니터 너머로는 안 되더라.”

홈쇼핑 프로그램을 보다 스캔을 시도하는 스크랩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와. 이런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니 부러워요.”

“음 부러운가? 난 조금 생각이 달라.”

“네?”

스크랩 형이 웃으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악령은 저주라고 생각해.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해서 더럽게 물든 추악한 힘.”

“더럽다뇨? 이렇게 신기하고 대단한데.”

“음~ 그래? 내가 알기론 악령을 얻기 위해서 가문 단위로 아들딸들에게 인체실험을 하는 집안이 있거든? 자기네들이 가진 첨단기술력을 이용해서 더욱 희귀하고 유능한 능력을 배양하고 있대. 그 힘들이 모이면 가업을 더욱 번창시킬 수 있거든. 다시 말해 가업에 쓸 도구들을 사육하는 거야. 그 덕분에 그 집안은 성공해서 세계 아니 이 은하계에서도 알아주는 최고의 집안이 되었대.”

“혹시….”

“그 집안의 장남은 그게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 여겼어. 자기가 집안의 중요한 일원이자 후계자 나아가 가장으로서 잇는 걸 기뻐했지. 근데 말이야 이 친구가 알아챈 거야. 실은 자기한테는 형 누나가 잔뜩 있었는데 전부 사라졌단 걸 알았지. 집안의 어른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도 깨달았어. 충격적인 진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벌벌 떨던 장남은 가문에서 도망치기 위해 투신했어. 하지만 자살은 실패했지. 그런데 어라라? 떨어질 때 충격으로 어릴 적에 부모님한테 흠씬 혼난 기억을 잊어버렸대. 그렇게 기억상실에 걸렸는데 집안에서 준 특이한 능력까지 사라진 거야.”

스크랩 형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드디어 이 추악한 집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안도했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거야. 자기 동생들이 그 실험에 참가하게 됐어. 장남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무작정 어른들에게 달려갔지만 때는 늦었지. 이미 동생들은 장남 때문에 가문의 도구가 됐거든. 장남은 죽도록 후회했어. 자기만 도망치려 한 이기심의 최후를. 그때 그 장남을 도와준 이가 있었는데.”

“오롯이었군요.”

스크랩 형이 살짝 미소를 짓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이얀 요정이 나타나서 신비한 힘을 되찾게 도움을 주겠다는 거야. 장남은 바로 요정에게 힘을 달라고 부탁했고 이전에 지닌 힘보다 더 대단하고 멋진 힘을 받아 집안의 쓸모있는 일품 도구가 되었어. 그리고 어른들에게 말했지. 무엇이든 할 테니 동생들을 저 멀리 스타랜드로 유학보내달라고. 어른들은 반대했지만 장남이 혼자서 수십 명 사람 분의 일을 하는 걸 보고 허락했어. 덕분에 동생들은 추악한 손아귀에서 벗어나 잘살 수 있게 됐대.”

어느새 오롯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래서 장남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대.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는 자기 동생을 잘 돌봐줘서 무지무지 고맙다고 말이야.”

“…형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전 그저….”

“어허!! 그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야. 내 얘기는 아니라구??”

첫 만남 때 본 밝고 티 없는 웃음이 만면에 퍼진 스크랩 형.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네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죠.”

“자. 어서 가자구! 나와 널 위한 고기 파티가 기다린다!!!!”

오늘 우리가 들고온 무거운 짐들은 과연 그가 등에 짊어진 보이지 않는 짐만 할까.

고기를 다 먹고 난 후 소화할 겸 운동을 하자고 스크랩 형이 제안했다. 6명 모두 제니퍼 누나의 포탈을 타고 널따란 강당에 도착했다.

“여기 우리 기획사 강당인데. 맘대로 써도 된대.”

역시 톱 아이돌쯤 회사에서 지원하는 급이 다르다.

“그럼 뭐할래? 6명이니 3대3으로 나눠서 팀대결 할까?”

레노바티오 형의 진행에 다들 뭘 할지 논의할 무렵.

“피구!!! 피구가 좋아!!!”

오롯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아니 피구라니. 20대 형 누나들이 좋아할 리가….

“호오? 피구 좋지. 힘의 차이를 보여줄게.”

“하하하하!! 제니퍼 너 되게 웃기다. 주제를 알라고!”

“이 [운수대통] 님이 나서면 공이 나를 피한다고?”

“흥. 면상에 맞혀줄게요.”

뭐야 이 사람들 피구 왜 이리 좋아해????

“그래. 그러면 ‘그 규칙’을 따를까?”

레노바티오 형이 비열하게 웃으며 모두를 응시한다.

“좋아. 그게 공평하지.”

천리 씨를 포함한 모두가 끄덕인다.

“자 그럼 자아공유자 피구를 시작한다!!!”

공으로 상대를 짓뭉개는 게 상품이라며 별다른 상품 없이 3대3 피구가 시작됐다. 팀은 남자팀 대 여자팀으로 진행됐다. 나와 레노 형 스크랩 형이 한 팀. 오롯과 천리 씨 제니퍼 누나가 한 팀이었다. 선공권은 천리 씨가 가져갔다.

“시작할게.”

나지막히 울리는 천리 씨의 목소리. 우선 공을 피하기 위해 경기장 뒤쪽으로 움직이는.... 응? 천리 씨가 자기 몸에 감긴 고리를 주욱 늘리더니 활 형태로 만드신다. 어라? 아니 뭐 천리 씨의 능력이 신체의 고리를 활로 만든다곤 하는데 그걸 왜 지금? 내 의문은 무시하듯이 천리 씨가 공을 시위에 갖다대며 작디작은 입술을 움직였다.

“[삼형제별]”

“!!!!!!!”

슈와악이라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공이 내 머리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라? 빗나갔네.”

뭐야 이거!!!!!!! 공을 무슨 화살처럼 쏘냐고!!!!!!!! 저 누나 일말의 고민 없이 내 얼굴에 공을 쐈다고!!!!! 내 [절대영역]이 아니었으면 얼굴에 구멍 났을 거야!! 홀스타2가 됐을 거라고!!

“뭐예요 이거!!!!!! 능력을 쓰면 어떡해요!!!!!!!!!”

너무 놀란 탓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어이!! 마우스 친구!!”

공을 주워온 스크랩 형이 양손에 공을 들고 내게 말했다. 응? 양손에 공?

“자아공유자 피구의 룰을 알려주지!‘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이기기 위해 악령을 쓸 것’!!”

그렇게 외치며 복제한 공까지 2개의 공을 던지셨다.

“[오방재가]”

“[삼형제별]”

“퓨처!”

제니퍼 누나는 포탈을, 천리 씨는 방석에 앉아 순간이동을, 오롯도 포탈을 타 각자 공을 피했다.

“쳇. 한 년은 보낼 줄 알았건만.”

“생각이 약아. 우리 스크랩 군.”

서로에게 도발이 오가는 이 불온한 전장에 난 내던져진 것이다.

“미친. 이게 뭔 게임이야!!”

도망가려는 찰나

“핮!!! 죽어랏!!!!!”

제니퍼 누나가 포탈로 공을 던졌다. 그 공은 스크랩 형의 명치 앞에서 나타났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하하하하!! 이 정도는 해야지! 안 그러니?”

부들대는 스크랩형. 2대 3 구도가 된다. 기어가며 상대팀 라인 밖에 겨우겨우 선 스크랩 형. 나도 공 맞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어 두려워진다.

“자 스크랩 패스!”

레노 형이 스크랩 형에게 공을 넘긴다.

“후우....”

스크랩 형이 잠시 심호흡하더니

“Ctrl+C Ctrl+V!!!!”

왼손에 공을 들고 오른손으로 복제한 공을 마구마구 던진다.

“앗!!!”

방석에 앉아 이리저리 피하던 천리 씨가 공 포화를 맞고 장렬히 아웃된다. 스크랩 형 아까 명치 맞은 울분을 푸는 듯 이미 아웃했는데도 공을 너댓 번 더 맞히고서야 끝냈다. 그렇게 경기는 2대2 구도가 된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제니퍼 누나가 발밑에 포탈을 두더니 그곳으로 공을 떨어뜨린다. 엉? 공이 어디 갔지? 잽싸게 주위를 살피는 나와 레노 형. 하지만 공은 안 보인다.

“여기야.”

라인 밖에 서 있던 천리 씨의 손에 있었다. 아뿔싸 설마 아군의 손 위로 포탈을 만든 건가!! 피할 틈도 없이 날아오는 천리 씨의 공 화살은 이번엔 레노 형에게 향했다. 아니 근데 레노 형 안 피하잖아?!

“형 피해요!!”

“하하 블루 너 내가 누구라구 생각하는 거야? 난 [운수대통]!!!! 최고의 운을 지닌 내가 공을 맞을 ㄹㅣㄴ5우아바바아어더도고다마마모도곡앜!!!!!!!!”

“형!!!!!!!!!!”

“아니 아무리 운이 좋아도 안 피하면 보통은 맞지. 아까 못 맞힌 게 이상한 거라고.”

점잖게 말하는 천리 씨. 배를 맞고 나뒹구는 레노바티오 형은 한참이 지나서야 라인 밖으로 나갔다.

“좋아! 남은 건 볼록스타뿐이야!!!”

1대 2의 상황. 좋지 않다. 이대로 가면 진다. 적어도 강적인 제니퍼 누나를 아웃시켜야 한다.

“하하! 끝이다!!!”

제니퍼 누나가 또 포탈로 공을 던진다. ? 장! 날 맞히려는 건가!!!! 눈을 질끈 감았다.

“....”

“....”

“뭐야? 공 어디 갔지?”

어리둥절해하는 제니퍼 누나. 그때.

‘통’

“??”

레노바티오 형이 통하고 던진 공에 누나가 아웃됐다.

“아니. 포탈이 내 손 위에서 열리길래.”

“뭐?! 뭔 소리야! 난 블루스타 군 명치에 포탈 열어서 꽂을 생각이었다고!”

아무래도 [절대영역] 탓에 포탈이 엉뚱한 데 열렸나보다. 더더구나 갈 곳 잃은 공은 운이 가장 좋은 레노바티오 형의 손 위로. 정말 어이없게 아웃된 제니퍼 누나는 레노 형의 멱살을 몇 번인가 잡아당기고 나서야 진정하고 라인 밖으로 나가셨다.

“후후후후! 이제 남은 건 우리 둘뿐이네 별로스타!!”

오롯이 공을 들곤 내게 가소롭단 표정을 보인다.

“응 그러게. 근데 긴장되진 않는다. 가볍게 이길 듯.”

왜냐하면 뒤에서 천리 씨와 제니퍼 누나가

“공 던지는 방법은 알지?”

“오롯아!!! 블루 군의 공에 닿으면 안 돼!!”

엄청 안절부절못하며 오롯에게 필사적으로 룰을 알려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 날 못 믿겠어?”

“”응“”

즉답한 두 누나. 오롯은 삐진 듯 볼을 부풀리며 손을 위 아래로 흔든다.

“아 뭐야!!! 둘 다 너무해!! 홀랜드 아저씨한테 이를 거야!!!!”

그러고는 오롯의 몸이 희미해져간다.

“자아공유?!”

홀랜드. 이 자아공유자 집에 사는 마지막 여섯 번째 인물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일이 바빠 일터에서 자고 온다고 했다.

“우하하하하하하하!!!!”

경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오롯은 온데간데없고 웬 자줏빛 아저씨가 나타났다. 십자로 반짝이는 희번덕 뜬 눈에 배때기에 붙은 육각형. 그리고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의 아저씨였다.

“피구로 호오오온내 줄 애가 있다면서?”

형 누나들에게는 모습이 보이지 않겠지만 오롯의 말투와 분위기가 바뀐 걸 보고 홀랜드라는 사람으로 자아공유했을 거라 짐작한 거 같다.

“좋아. 근력 최애대로!!!!”

불끈해진 팔로 공을 슈아앙 던지셨다. 위험해! 아슬아슬하게 피했다만....

“으악!!”

라인 밖에서 공을 잡던 천리 씨도 너무 센 투구 때문에 놓치고 마셨다.

“아 이런. 너무 셌다.”

뒷머리를 긁적이는 홀랜드 아저씨.

“아저씨의 능력은 근력강화인가요?”

천리 씨가 놓쳐서 우리 팀 것이 된 공을 튀기며 여쭙는다. 내 의중을 눈치 채고 스크랩 형과 레노바티오 형이 저 멀리 가셨다.

“뭐 그렇지?”

근육괴물을 내가 아웃시킬 수는 없다. 머얼리 공을 패스해 스크랩 형의 공 복제 연타로 승리를 노릴밖에.

“오오 어떻게 쓰는 거예요?”

“아아. 내 배에 있는 이 아름다운 배딱지 보이지? 이걸 누르면 돼.”

라고 친절히 설명해주는 사이 공을 멀리 던졌다. 좀 빠르게 던졌으니 잡기 힘들 거다. 좋아! 스크랩 형이 손을 뻗어 공을 받으려는데

“근력수치 통상으로. 동체시력 강화. 주력 강화.”

배딱지를 딱따닥 치시고는 쏜살같이 달려서 공을 낚아챈다. 그것도 스크랩 형 바로 앞까지 날아온 공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공을 가져갔지?!

“다리근력을 강화하신 건가? 너무 빠른데.”

“음.... 조금 다르지? 주력을 올려서 빠르게 달리고 동체시력을 올려서 느리게 보이는 공을 잡은 거니까.”

아하. 이 아저씨도 천리 씨처럼 3개의 능력이 있나보다. 근력 주력 동체시력의 3가지 말이다. 다시 근력을 올린 홀랜드 아저씨의 투구. 와씨 겨우 피했다. 또다시 공을 놓치고 만 천리 씨.

“오 되게 잘 피하네. 막 날아오는 거 피하고 그러는 거 자주 했나봐?”

“하하하. 점프점프가 특기거든요.”

다시 내게 돌아온 공. 이번에는 공을 잡자마자 바로 스크랩 형에게 넘겼다.

“좋아. 이겼다!!”

“하하하하!! Ctrl C Ctrl V!!!!”

스크랩 형이 복제신공을 보이며 공을 던진다.

“순발력 강화. 동체시력 강화.”

?!?!?! 이게 무슨 일이지. 스크랩 형이 던지는 수십 개의 공을 전부 피하고 있었다. 너무 잘 피하다 보니 오히려 반대편에 있던 레노 형이 공을 맞는다.

“뭐야!! 능력 3개 아니었어?! 순발력까지?”

“하아하~ 난 능력이 하나인걸?”

공을 요리조리 피하면서도 여유 있단 듯이 나와 대화도 한다.

“[육각원칙]. 6개의 능력치를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근력 주력 순발력 지력 동체시력 그리고 랜덤!! 어때?! 짱이지!!!”

이 정신없는 아저씨는 성격만큼이나 능력도 부산스러웠다. 사실상 6개의 능력이 아닌가? 이런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이겨!

“미안하다 불륜 꼬맹이. 우리 오롯이 널 좀 혼내주라고 해서 말야. 그럼 수고링!!”

이번엔 어느 정도 힘을 빼 던지는 홀랜드 아저씨.

‘퍽!!!!’

“으악!!!!”

하지만 힘을 뺐다고 해도 속도와 파워는 장난 아니었다. 결국 그 공에 맞아 아웃된 나.

“아즈아~!!!! 이겼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진심을 발휘해 이겨 신난 아저씨의 우승 소감을 뒤로 하며 자아공유자 피구 경기는 여자 팀의 승리로 끝났다.

“아야야야….”

“미안 미안. 괜찮아?”

피구 경기가 끝나고 홀랜드 아저씨가 치료해주셨다. 치료라고 해 봐야 구급상자를 열어 연고 따위를 바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야~~ 오롯의 친구래서 진심을 내 버렸지 뭐야!”

“뭡니까, 그 같잖은 이유는.”

“하하하. 오롯이는 내 딸 같은 애거든.”

“혹시 그겁니까? 딸이 남자애를 집에 데려왔어!! 으아아!!! 아버지는 슬프다구!!! 같은?”

“오! 절반은 정답!!”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쑥스러우신 건지 머리를 긁적이며 와하하 웃으신다.

“오롯한테 제 얘기 들으셨나 보네요.”

“고럼! 자아공유를 하면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는 특이한 악령이라면서? 지금 내 모습도 보이잖아. 더더구나 오롯이 처음 사귄 친구잖아!”

“네? 처음 사귄 친구요?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그럼…?”

“오롯은 학교 다니는 거 이번이 처음이야.”

학교 다니는 게 처음이라고?

“어쩐지 애가 너무 바보 같더라고요.”

“아하하하. 그래. 그런 애니까 네가 좀 잘 돌봐줬으면 하는군. 학교에서 친구도 사귈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아, 내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네.”

“아니에요, 오롯이 친구가 생겨서 저한테서 멀어지면, 저야말로 좋은걸요.”

“와 너 할 말은 하는 성격이구나.”

대화를 하면서 어느덧 치료가 끝났다. 구급상자를 정리하시면서 홀랜드 아저씨가 말했다.

“오롯은 말야. 순박하고 착한 애야.”

오늘 레노바티오 형, 제니퍼 누나, 스크랩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곤경에 처한 모두를 오롯이 도운 것.

“왜 오롯은 형 누나를 도왔죠? 자아공유하기 위해서?”

나한테 계속 자아공유하자고 하는 것도 그렇고, 오롯은 뭘 위해서 그렇게 돕는 걸까. 내 질문을 들은 홀랜드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시더니

“이유 없어. 오롯 그 아이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까 돕는 거야.”

그 아이는 순수한 아이니까 하고 아저씨가 덧붙여 말하신다.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사람을 돕는 게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 도움을 바랐기에 그 자리에 있던 오롯은 도와주었을 뿐이다.

“아무 이유 없이 남을 돕는다라….”

다치고, 지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뻗는 것.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오롯은 강한 아이구나 생각했다.

“그럼 혹시 홀랜드 아저씨한테도 오롯이?”

“응. 그렇지.”

잠시 창밖을 응시하신다. 어느새 밤이 되어 별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난 말이지, 왕의 명령을 받고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어. 왕이 그 연구에 되게 관심이 많으셔서 나한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지. 돈이든, 물건이든, 심지어 인체실험을 할 꼬맹이든 말야.”

인체실험? 깜짝 놀란 내 표정을 눈치 채신 아저씨는 아랑곳않고 이야기를 잇는다.

“그 재료로 온 게 한 여자아이였어.‘악마’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양산하고 싶던 우리의 왕은 그 아이를 통해 연구가 성공하기를 바랐지. 그 아이를 이용해서 인공악마실험을 성공하라고 말야. 뭐. 그때의 난 이래저래 뒤틀린 성격이어서 그 어린 아이를 상대로 말못할 실험을 자행했지. 자기 이름도, 가족도 모르는 애를 데려다가 별의별 짓을 다했어. 지금 내 얘기를 듣는 네가 나를 때려죽여도 할 말 없을 정도의 일들을 말야.”

과거의 잘못에 밀려드는 후회와 분노 때문인지 홀랜드 아저씨는 있는 힘껏 주먹을 쥐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언갈 부수든, 자기 자신을 패든 하고 싶으셨겠지만 자아공유 중이라 참으신다.

“그런데 실험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정말 짜증났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괜히 그 꼬맹이한테 화풀이하고, 그럼에도 실험 성과는 나오지 않아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또 쌓였지. 하하 그러다가 결국 몸져 누웠지. 평소 같았으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정신적으로 지쳐 있던 건지 진짜로 죽을 것 같더군. 아 이제 끝인가 싶던 찰나 눈을 떴는데 몸이 매~우 개운한 거야! 며칠 간 앓던 병마가 가시고 피로도 해소됐으니 그토록 기쁜 일은 없지. 기분이 너무 좋았어. 그런데 개운하게 샤워나 할까 하고 화장실에 간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

잠깐 뜸을 들인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 듯.

“거울에 비친 건 내가 아니라 오롯의 모습이었어.”

홀랜드 아저씨는 오롯과 그날 처음 자아공유를 했던 거다. 아파하는 홀랜드 아저씨를 대신해 자신이 아파하기 위해서. 건강한 자신의 몸을 홀랜드 아저씨에게 준 것이다. 정작 자기는 아픈 아저씨의 몸에서 끙끙 앓을 터인데도.

“참 나. 화나지 않냐? 고아를 데려다가 이름도 안 지어주고 괴롭히고 울리고 아프게 한 아저씨라고? 그런 쓰레기가 아파서 앓아 누웠어. 꼴좋다. 꼬시다. 벌받았다. 더 괴로워해라.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보통 아니야?”

아저씨를 계속 울분을 토해낸다.

“근데 그 꼬맹이는 말이지,‘아저씨가 괴로워 보이니까…. 도와주고 싶어서 자아공유했어요…. 죄송해요….’라고 말했어! 내 몸속에 들어가서 앓아 누운 채 말야! 나는 정말이지!!! 인공악마실험을 위해 인간성이고 뭐고 다 집어 던졌는데!! 그 아이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아무 때나 칼에 찔려 죽을 심산으로 살았는데…. 그 아이는 날 찌르지 않았어. 오히려 날 안아주었다고!!”

케케묵은 무언가를 토해내듯 말한 홀랜드 아저씨는 한참 간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겨우 진정을 하신 건지 구급상자를 제 위치에 두고 다시 말하셨다.

“…. 오롯이라는 이름은 내가 붙여준 거야. 모든 일이 끝나고, 오롯과 같이 탈출했을 때 내가 지어준 이름이지. 무슨 뜻인지 알아?

“모자람 없이 온전하다는 뜻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 넌 그 이름을 내가 무슨 의도로 지어주었을 거 같아?”

“음…. 그냥 이뻐서 지어주었을 수도 있지만. 자아공유자 모두가 모여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동료애를 강조한 이름인가요?”

“아하하. 재밌네.”

홀랜드 아저씨는 자아공유를 해제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그 아이가 우리에게 손을 뻗어주었을 때. 그렇게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오롯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야.”

씨익 웃고는

“오롯과 잘 지내다오.”

하며 사라지셨다.

“야호!!! 브라스타! 어제는 재밌었어!”

“오 안녕.”

다음날 아침. 등굣길에서 오롯과 만났다. 음….

“뭐야, 뭘 그리 빤히 바라봐? 내가 그렇게 이뻐?”

“그래. 이쁘긴 하네.”

“후후훗!! 불륜도 결국 나의 성적 매력에 빠지고 말았구나!! 큐트에서 나로 갈아타는 것도 시간 문제네!”

“아니, 그건 아냐. 난 똑똑한 여자 좋아해. 그러니 너랑은 절대 그런 일 안 일어날 거야.”

에에이!! 뭐야!!! 하고 떼를 쓰는 오롯. 계속 무시했더니 결국 체념하고 만다.

“아 맞다. 너 준비물 잘 챙겼지?”

“응!! 언니 오빠들이 챙겨줬어! 우리 오늘 현장체험학습 기대된다! 그지?!”

“응. 분명 지아이디 산업단지라고 했나?”

“야호~!! 나나나 도착하면 제일 먼저 호랑이 볼 거야! 호랑이한테 가서 손! 해야지!”

“그건 동물원이지. 그리고 만약에 호랑이 보더라도 손! 같은 거 하지 마!! 너 다친다고!!”

“엥? 그런가? 하하항!”

자기는 아랑곳 않고 남에게 손을 뻗어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이 오지랖 넓은 바보. 이 바보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마다-

철컹…. 철컹….

인간 전함을 묶은 두꺼운 쇠사슬이 쇳몸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지하감옥.

그 누구도 이 남자가 빛의 침략부대 사령관이라곤 상상조차 못할 거다.

뇌제 2세의 뜻,‘빛으로 별을 덮겠노라.’ 그 말을 최전선에서 수행하며 가장 많은 전공을 올린 것이 바로 이 남자 아르마다였다.

그런 그가 충성을 바친 국가의 감옥에 갇힌 이유는 단 하나.

한 번의 패배.

그 패배의 누명을 모두 뒤집어쓰고 이곳에 수감되었다.

“후우우우….”

그렇게 아르마다는 누구도 부르지 않는 이곳 감옥에서 천천히 녹슬어 간다.

-노르망디-

“위험해.”

겨우 오롯을 안전한 곳으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개입했다. 자아공유자들이 모여있는, 더구나 홀랜드 교수까지 있는 그곳이라면 오롯은 당연히 안전할 것이다. 설사 아르마다가 오롯의 몸을 강탈해 난동을 부리더라도 홀랜드 교수라면 제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 녀석을 자아공유자들이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놈한텐 어떤 악령도 통하지 않아. 그렇다면 악령을 쓰지 않고 막을 수 있을까? 아니. 그놈의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

“절대영역이라니. 오롯의 대피처로 고른 놈이 그딴 성가신 악령의 소유자일 줄이야.”

어둠속의 망령이 계획을 위해 보호해야 할 대상인 빌런스타. 오롯의 근처에 그놈이 있다면 네오 오빠가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는 성공. 별다른 위협은 없다. 오롯이 일부러 어둠속의 망령을 만나러 가지 않는 한, 그들과 접촉해 오롯이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절대영역 때문에 나와 오롯의 관계가 깨질 수도 있어.”

그건 절대 안 된다. 오롯을 위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 잠시만.”

지금 스타시티에 자아공유자 모두가 정착했다. 아르마다 그 파괴광은 차치하더라도. 그만큼의 자아공유자가 모여있으면 어둠속의 망령이 습격해도 오롯은 안전하지 않을까? 어둠속의 망령에서 도주해 정착해 안전을 확보하기까지 고기방패로 준비해둔 블럭스타는 제 역할을 다한 거 아냐? 이제 오롯의 안전 확보는 자아공유자에게 맡기면 되잖아. 그놈은 필요 없어졌잖아?

“하. 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불륜스타를 죽이자.” 

개고판 편집

※ 본 외전소설은 「뇌제의 일곱 제후 1부 v.2.0」 때 출시된 「자아공유자」의 개고(改稿)판입니다.

※ 본 외전소설의 시점은 「오롯 편」 이후 「어둠속의 망령 편」 이전입니다.

외전소설 「자아공유자」 편집

“어 레노바티오 형??”

“오 블하! 블루스타 하이라는 뜻!”

하굣길에 레노바티오 형을 만났다. 잠시 산책 중이셨던 거 같다.

“형 이 주변에 살았어요?”

“응. 몰랐어? 오롯이 얘기 안 해주던?”

“오롯 걔 맨날 자아공유하자 자아공유하자 이런 얘기밖에 안 해요.”

“아하하하.”

그렇다. 오롯이 전학 오고 실속 있는 대화를 많이 못 나눈 것 같다. 오롯이 어떤 아이인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오롯을 보며 떠오르는 건 이제 ‘바보’와 ‘자아공유’ 둘밖에 없다.

“형도 정말 고생이실 거 같아요. 그런 애랑 자아공유를 하다니.”

“응 그래? 난 오히려 오롯에게 고마운걸.”

“엥.”

오롯 그 애에게 고맙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형도 이상해진 걸까.

“야 블루야. 괜찮으면 우리 집 놀러올래?”

“형네 집요?”

“응. 전에 쫓기던 오롯을 도와줬잖아. 감사 인사도 할 겸 저녁 쏠게.”

“고기?”

“고기!”

“콜! 좋아요!”

레노바티오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무진장 큰 집 앞에 멈춘다.

“어? 여기가 형 집이에요?”

“아 이 집? 전 주인이랑 내기해서 땄어. 하하하하하! 최고지 않냐? 집을 따왔다고!”

“헐.”

이 형이 내기를 좋아한다곤 했는데, 집까지 딸 정도라니. 여하튼 레노바티오 형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형의 집. 2층에 마당까지 있는 매우 큰 집이다.

“친구들이랑 같이 살고 있어. 몇 명은 일하느라 나갔는데, 아마 한둘은 남아 있을 거야.”

“몇 분이랑 사시는데요?”

“날 포함해서 여섯 명.”

“되게 북적북적하네요.”

현관에 들어섰다. 온갖 신발이 널브러져 있었다. 운동화, 단화, 하이힐, 구두 등등. 엥? 갖신도 있네. 이건 박물관에서나 보던 건데.

“다녀왔어.”

“안녕하세요.”

집에 들어가니 넓은 거실에 탁 트인 주방까지. 전형적인 비싼 집 느낌이다.

‘두다다다다다’

2층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난다. 집에 있던 분이 우리를 맞이하시려나.

“어서 와!!!!”

“안녕하세.... 어?”

집에 있던 사람이 오롯??

“어? 오롯??”

“오 비릿스타! 우리 집에 놀러온 거야?”

“네? 우리 집?”

멀뚱멀뚱 레노바티오 형을 바라본다.

“내 친구라고 해서 네가 오해했구나. 정정할게. 여긴‘자아공유자가 사는 집’이야.”

“야호! 불륜이 우리 집에 놀러왔다!!”


3번째 자아공유자, 레노바티오 편집

오롯의 손에 이끌려 1층 거실 소파에 앉았다. 오롯과 레노바티오 형은 먹을걸 챙기러 주방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큰 집인데 거실이 주방과 연결된 탓에 엄청 넓어 보였다. 구조는 우리 집과 비슷한데, 넓은 탓인지 이 집이 더 비싸 보인다.

“여기 오렌지주스!”

오롯이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왔다. 그러곤 근처의 소파에 착석한다. 군것질거리를 준비한 레노바티오 형이 그 옆에 앉았다.

“자아공유자들 모두가 한 집에 사는 줄 몰랐네요.”

“원래는 다 따로 살았지. 근데 오롯이 스타랜드로 이사 온다는 거야. 집은 어디에 구했냐니까 ‘엥? 집 구해야 돼요?’라는 거 있지?”

“아하하하하. 집 구할 생각을 못했어.”

아니 오롯. 얜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야.

“자아공유자 애들 단체로 난리가 났지. 머리 모자란 애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까.”

“어라? 레노바티오 오빠? 저 안 모자란데요?”

“그때 내가 제안했지. ‘우리 모두 오롯한테 신세진 것도 있고 하니, 내 집에서 다같이 살자’고. 모여 살면 생활비도 아낄 수 있고, 오롯도 돌봐 줄 수 있잖아. 다들 OK 하면서 이 집에 모였지.”

“다들 친한가 보네요. 바로 같이 살자고 하고.”

“응 그렇지. 마침 스크랩이라는 친구는 SSC에서 스타랜드로 발령나서 집을 구하던 중이었고. 천리라는 친구는 가족이 없어서 형편이 안 좋았거든. 내 집에서 셋이 모여 살까 하며 의논하던 차에 노숙자 오롯이 등장했던 거지. 자아공유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도 나도 같이 살자 해서 6명이 한 집에 살게 됐어.”

나는 대학교에 가면 친구랑 룸메 맺어서 자취한다는 로망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레노바티오 형이 자아공유자 분들과 지내는 걸 보니 조금 부럽다. 아 그러면 이런 것도 있으려나.

“자아공유자 단체 대화방 같은 것도 있겠네요. 거기서 그날 먹을 저녁거리 얘기하면 하교 중인 오롯이 대화 내용을 읽고 하이퍼스타마트에 가서 장 보고 오거나.”

“물론 단체 대화방은 있어. 근데 오롯은 휴대폰이 없어.”

“어? 그럼 오롯과는 어떻게 얘기한 거예요?”

스타랜드로 이사 온다던 오롯의 말을 들었다고 하셨는데, 휴대폰도 없는 오롯이랑 어떻게 연락하신 거지?

“텔레파시.”

“텔레파시요?”

“그래. [자아공유]가 가진 힘 중 하나야. 오롯 얘는 각각의 자아공유자와 텔레파시 채널이 있어. 그래서 개개인과 소통할 수 있지. 녀석이 스타랜드로 올 때도 내게 텔레파시를 보냈어. 스타랜드로 이사한다고.”

자아공유를 하면 오롯과 텔레파시를 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의 텔레파시는 오롯이 실없는 소리를 할 때 쓴다는 거지. 지금도 나한테 ‘팝콘 과자 가져와줘요!!!!’라고 계속 텔레파시 보내고 있어.”

“우물우물 냠냠.”

“야 네가 직접 가져와.”

“넹”

오롯이 과자를 가지러 부엌에 간다. 거실에 둘만 남는다.

“텔레파시 용도가 도대체 뭐예요? 지금처럼 오롯이 헛소리 하는 용도?”

“텔레파시를 통해서 서로 자아공유가 필요할 때 연락해. 자아공유를 하면 서로의 능력을 쓸 수 있거든.”

“아 그런 용도군요.”

능력을 쓸 때마다 연락을 하는 건가. 그러고 보면 레노바티오 형도 능력이 있었나.

“레노바티오 형의 능력은 ‘그 상황에서 가장 운이 좋아지는 것’이었나요?”

“응. 덕분에 어떤 내기에서도 우승할 수 있지.”

라면서 크큭 웃는 레노바티오 형.

“아니 형은 도박하려고 오롯이랑 자아공유 한 거예요?”

“하하하. 그런 건 아니고. 음....”

웃다가 갑자기 말을 머뭇거리는 레노바티오 형.

“블루. 내 직업이 뭐라고 생각해?”

“도박사. 딜러. 사기꾼.”

“에이, 농담도. 스턴트맨이야, 스턴트맨.”

내기를 좋아하길래 카지노에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스턴트맨이라니 의외다. 전에 레노바티오 형이 도청과 싸울 수 있던 것도 스턴트맨으로서의 운동신경 덕인가.

“난 스릴을 좋아해. 승부를 할 때 오는 그 스릴감도 좋지만, 스턴트 연기를 할 때 오는 그 아슬아슬함도 좋아하거든.”

“위험하지 않아요?”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지. 그걸 몰랐을 때는 정말 어리석은 짓을 했어.”

미소를 띠던 레노바티오 형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당을 보며 얘기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격한 스릴감을 느끼기 위해 안전장치를 쓰지 않고 스턴트를 했어. 내 실력을 믿은 거야. 스태프분들이 걱정해도 난 괜찮다며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지. 그러다 사고가 났어.”

괴로우신 건지 얼굴을 일순 찡그리신다.

“크게 다친 건 아니었어. 그냥 신경만 살짝 손상돼서 왼손에 감각이 사라진 정도였지.”

“네?! 그거 많이 다친 거잖아요!”

“아냐. 내가 다친 건 별거 아니었어.”

한숨을 쉬시고 말을 이어가신다.

“내 사고 때문에 입은 동료들의 피해. 난 그걸 생각하지 않고 내 스릴만 즐기려 했어. 나 때문에 다친 동료 배우. 안전관리에 소홀했다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선배. 사고라는 안 좋은 여론 때문에 작품을 망친 스태프. 그들이 입은 모든 피해에 비하면 내 왼손이 아픔을 못 느끼는 건 정말 별것 아니야.”

자기 왼손을 만지작거리는 레노바티오 형. 아직도 후유증이 있는 걸까.

“병원에서 정말 괴로웠어. 자살…도 생각했지만, 책임지지 않고 도망치는 거 같아서 그만두었지. 하루하루…. 어떻게 이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가만 생각했어. 그러던 때 오롯을 만난 거야.”

“오롯을요?”

계속 어둡던 형의 표정이 밝아진다.

“사고 기사를 읽고 나를 보러 왔대. 자아공유를 하고 싶다나 뭐라나. 네 맘대로 하라고 말하고 내보냈지. 그때는 웬 초등학생이 나타나서 장난친다 생각했어. 그런데 다음날 기적이 일어난 거야. 이 손에 감각이 돌아왔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론 운이 정말 좋았다고 하시더라고.”

레노바티오 형이 하핫 하고 웃는다.

“나중에 퇴원하고 보니까 저 녀석이 한 [자아공유] 덕이었어. 오롯과 자아공유를 해 얻은 [운수대통]. 그 상황에서 가장 운이 좋아지는 힘. 그 능력이 발휘돼 금방 퇴원할 수 있었지. 하하하. 웃기지 않냐. 네 맘대로 하라고 내쫓은 건데도 오롯은 날 도와준 거야. 그 바보는 사람 의심할 줄 모르니까.”

오롯이 항상 실없이 얘기하던 자아공유 이야기. 그 실없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이렇게 큰 구원이 될 수 있었다. 마냥 바보라 생각했던 오롯에 대한 내 평가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퇴원하고 며칠 지나서 오롯이 텔레파시를 보내왔지. 아프지 않냬. 아프긴커녕 덕분에 다 나았다고 고맙다고 했지.”

창밖만 보던 레노바티오 형이 날 바라본다.

“오롯과 만난 그날 이후 난 용서를 받는 삶을 걷고 있어. 그걸 위해 스턴트맨 일을 다시 시작했어.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했지. 그렇게 번 돈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께 보냈어.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받고 싶거든. 물론 돈만으로 다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야.”

“어? 그럼 형 생활비는요?”

내 질문에 레노바티오 형이 멋지게 웃어보인다.

“상관없어. 난 도박에서 따낸 돈으로도 이렇게 잘 먹고 잘사니까.”

농담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레노바티오 형. 때마침 오롯이 과자를 들고 돌아온다. 셋이서 사이좋게 과자를 먹는다.


4번째 자아공유자, 제니퍼 편집

“사랑의 별 저 별을 향해~♥ 고백할래 널 좋아해~!”

오롯이 튼 TV화면에서 인기 아이돌 제니퍼 누나가 공연하고 있었다. 외모에 춤에 노래실력까지 다 갖춘 스타랜드 톱 아이돌 제니퍼. 데뷔 후 1년 넘게 무명 아이돌이었지만 지금 부르는 그녀의 대표곡 ‘별노래’가 대히트를 치면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 후 2년간 꾸준히 히트곡을 내면서 명실공히 스타랜드 대표 아이돌로 자리매김했다.

“오 제니퍼 언니 노래한다.”

오롯도 제니퍼 누나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그럼 그럼 우리 누님을 모르는 사람이 스타랜드에 있을 리 없지.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제니퍼 누나 팬카페 우수회원이다. 별노래 발표로 톱스타가 되기 전 곡인 끝노래 때부터 좋아했는데 그 때문인지 지금 유명해진 제니퍼 누나를 보면 괜스레 내가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스타를 알아보았다는 뿌듯함이 든다. TV 속에서 공연이 끝난 제니퍼 누나가 관중께 인사드리고 있었다. 매번 공연이 끝날 때마다 벅찬 듯 감사를 드리는 저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 생각한다. TV 공연이 끝나고 광고시간. 오롯이 내게 묻는다.

“불륜도 제니퍼 언니 좋아해?”

“그럼! 내가 저 누나 팬이라고! 나 모닝콜도 제니퍼 누나 노래야.”

“오 잘됐다! 그럼 둘이 한번 만나봐!”

“??”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오롯이 빛나더니 오롯 대신 다른 누군가가 서 있었다. 어? 어어어??????

“어머 안녕. 네가 오롯 친구?”

어어어어어????????

“반가워. 나 제니퍼라고 해. 오롯의 자아공유자야.”



“네?!?! 제니퍼 누나가 자아공유자!?!?!?”

“와 정말로 내가 보이는구나.”

저번 레노바티오 형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절대영역] 덕에 자아공유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제니퍼 누나도 놀라는 눈치다.

“아 내가 누군지 모를 테니 자기소개 해도 돼? 난 말이지….”

“누나를 어떻게 모릅니까! 스타랜드 아니 스타베리아 최고의 아이돌인데!”

“앗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이야 되게 부끄러운걸.”

제니퍼 누나가 꼬리까지 흔드시며 쑥스러워하신다. 꼬리별족인 제니퍼 누나는 꼬리가 달리셨는데 혜성꼬리를 닮은 그 꼬리는 무지 아름답다. 와와와 내 눈 앞에 진짜 제니퍼 누나가 꼬리를 흔들며 서 있다.

“저… 죄송하지만 악수해도 되나요?”

“그럼! 안 될 게 있나?”

우와!! 제니퍼 누나가 먼저 손을 건네셨다. 덜덜 떨면서 누나의 손을 잡는다. 오아 실화냐. 나 지금 톱스타 제니퍼 누나와 악수했다.

“내가 보기엔 오롯과 손잡고 기뻐하는 거로 보인다만.”

옆에서 흘깃 쳐다보던 레노바티오 형이 한 소리 거든다. [절대영역]인 나는 아무튼 제니퍼 누나로 보이므로 상관없다.

“우와 이렇게 좋아해주다니 고마운걸.”

“당연하죠! 전 끝노래 때부터 팬이었는걸요!”

“어 진짜? 그때부터 내 노래를 들어준 거야? 고마운데.”

어라. 왠지 제니퍼 누나가 조금 부자연스럽게 웃으신다.

“그래서. 공연 중에 자아공유해도 되냐?”

옆에 있던 레노바티오 형이 묻는다.

“응. 쉬는 시간이거든. 오롯이 텔레파시로 자기 친구 왔다고 저녁 같이 먹쟤는 거야. 알았다고 했더니 자기 친구랑 한번 만나보겠냬. 근데 뭐….”

“자아공유해도 제니퍼 너로 뒤바뀐 건 모를 테니 안 하겠다고 했는데, 오롯이 너한테 블루스타는 자아공유해도 바뀐 모습이 보이니 괜찮다고 했구먼.”

“응 맞아. 정말인가 궁금해서 자아공유 해 봤는데 정말로 날 볼 수 있구나.”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보니 무지 친해 보인다. 어? 잠깐만.

“아까 레노바티오 형이 말씀하셨죠? 자아공유자분들과 동거한다고. 설마…?”

“어. 맞아. 얘도 여기 살아.”

“제니퍼 누나께서 우리 동네에?!”

제니퍼 누나는 뭐가 그리 신기하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다. 본인이야 그러시겠지만 팬인 나는 깜짝 놀랄밖에.

“공연장에서 여기까지는 멀어서 차로 오가는 건 불편하지만, 내 힘을 쓰면 샤샥 하고 집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거든. 실은 지금도 공간이동으로 오려 했는데 자아공유해도 모습이 보인다는 게 신기해서 이렇게 와 봤어.”

“어? 제니퍼 누나도 신기한 능력을 쓰나요?”

“그럼. 자아공유자들은 다들 하나씩 지니고 있어. 난 [오방재가]라고 해서 공간을 재단할 수 있어. 꿰매고 잇고 찢을 수 있지.”

다른 자아공유자들도 각기 특수한 힘을 지닐 수 있구나. 그중 제니퍼 누나는 공간계의 힘이었다.

“예를 들면 짜잔. 이 대바늘을 써서 내 방에 다녀올게.”

제니퍼 누나가 대바늘을 소환하더니 허공을 기워내듯 바느질하신다. 그랬더니 어라? 허공에 포탈 같은 게 생기며 누군가의 방이 보인다. 와 이게 제니퍼 누나의 능력이구나. 자아공유함으로써 발현되는 공간에 바느질하는 힘.

“짠. 내 방이야. 한번 가 볼래?”

“네!!!!!!!!”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 나도 갈까?”

“레노 너 오기만 해. 죽인다.”

“앗…. 알았어요….”

놀라 주춤하는 레노바티오 형. 제니퍼 누나의 방엔 나와 누나만 갔다. 방에 도착하고 누나가 포탈에 꿰인 실을 뽑아내자 포탈이 닫힌다.

“제니퍼 누나랑 어울리는 힘은 아닌 거 같네요?”

“그렇지? 근데 그건 또 아니다?”

“네?”

제니퍼 누나가 웃는다.

“한번 봐봐. 끝노래를 좋아해준 우리 팬님을 향한 작은 서비스야.”

제니퍼 누나의 방을 둘러본다. 단조롭고 밝은 목재 가구들로 꾸민 방이다. 의상실이나 연습실은 다른 건물에 있는 건지 레노 형의 집에 있는 누나의 방은 자고 쉬는 용도의 방 같다. 책장에는 제니퍼 누나의 데뷔 앨범부터 최신 앨범까지 쫙 나열돼 있다. 벽에는 제니퍼 누나의 포스터가 잔뜩 있다. 그중에서 당연 눈에 띈 건 끝노래 포스터다. 칼 같은 거로 찢은 건지 포스터가 넝마짝이 되어 있다.

“어? 왜 저 포스터는….”

“아아 저거?”

제니퍼 누나의 꼬리가 바닥을 휘휘 쓴다. 뭔가 말을 꺼내기 힘든 거 같다.

“너라면 알지? 끝노래 발표 후 1년 넘게 아무 활동 없다가 별노래로 갑자기 뜬 거.”

당연히 알고 있다. 끝노래를 듣고 팬이 돼 제니퍼라는 아이돌에 대해 찾아봤지만 끝노래 발표 이후로 아무 활동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별노래로 인기가 급부상한 것이다.

“끝노래도 노래만 발표하셨지 따로 공연을 하신 건 없죠?”

“와 잘 아네. 맞아. 그래서 네가 더 고마운 거야.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 같던 그 노래로 내 팬이 되어주었다는 게.”

잠시 조용해지고는

“그리고 또 고마운 거야. 그 노래를 듣고 날 찾아와 구원해 준 오롯이라는 아이가.”

“네?”

“내가 왜 가수 활동을 쉬었는지 알아?”

“어… 수입이 없어서?”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거든.”

“…네?”

처음 듣는다. 제니퍼 누나의 사고라니. 다쳤단 이야기는 한번도 못 들어봤는데.

“사고 이후 정말… 비통하더라. 아이돌이 돼서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길거리에서 내 노래가 들려야 돈이 벌린대. 처음 팬이 생기고 그분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는데 돈을 벌려면 더 많은 팬이‘필요‘하대. 하고 싶은 일 꿈꿔온 일을 그렇게 돈으로 환산하며 사는 게 난 정말 싫었어. 고민했지. 이게 정말 내가 꿈꿔온 삶이 맞나? 하고 말이야.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아이돌 활동을 대충 하게 됐어.”

제니퍼 누나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말에 슬픔이 느껴진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삶에 회의를 느꼈지. 그런데 사고가 나서 걷지 못하고 아이돌로 활동하지 못하게 됐을 때. 그때가 돼서야 깨달았어.”

그리곤 눈물을 흘리며

“나… 정말로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나랑 내 노래를 좋아해 주는 분들과… 이야기하는 게… 정말 행복했는데…. 왜 난 그동안 열심히 안 한 걸까….”

그렇게 슬픔을 뱉어내신다.

“……그때 나 혼자 만들어 발표한 게 끝노래야. 내 노래인생의 끝. 감사할 줄 모르고 오만방자하던 나의 끝을 부른 노래지. 이제 알았지? 끝노래 발표 이후 1년간 활동이 없던 게 아니라 못한 거야. 아이돌로서 활동하지 못하게 됐으니까.”

“죄송해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아냐. 끝노래를 들어주고 내 팬이 되어주었다는 게 난 무지 기쁜걸. 내 모든 감정을 담아 울며 노래한 곡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 생각하니까 기뻐. 너는 물론 오롯에게도.”

“오롯?”

생각지도 못한 데서 오롯의 이름이 나왔다.

“병원에 갔는데 웬 여자애가 달려오더니 사인해달라는 거야. 날 아냐고 했더니 끝노래 듣고 팬이 됐다더라. 고맙다고 했지. 사인은 안 한 지 하도 돼서 내 사인을 까먹었어. 그래서 내가 머뭇거리는데 그애가 말하는 거야.”

‘사인하기 힘드시면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사진촬영인가 싶어서 좋다고 했지. 그랬더니 다시 무대 위에서 노래해 달라는 거야. 그리고 그 무대에서 꼭 끝노래를 불러달래. 이 아이는 내가 더 이상 못 걷는 걸 모르고 순진하게 부탁한 거구나 싶었지. 알았다고 했어.”

‘그럼 지금 당장 노래하러 가요!’

“바로 무대로 가자는 거야. 병원 야외 행사장에서 하쟤. 난 못 걸어서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내가 일어서더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수십 번 주저앉았는데 내가… 걸을 수 있더라고. 울면서 웃으며 일어섰다 주저앉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어. 그리고 노래했지. 무지 고맙고 또 슬픈데 기쁜 채로 제니퍼가 병원 식구들 앞에서 데뷔 무대를 치렀지.”

눈물 흘리던 제니퍼 누나의 얼굴엔 이제 미소가 가득하다.

“오롯이 자아공유로 내게 힘을 준 거였어. 공간을 왜곡해서 끊어진 내 허리신경을 이어준 거였어. 자아공유자들은 오롯과 자아공유할 때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자아공유하고 있지 않을 때도 조금은 힘을 쓸 수 있거든. 내가 지금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야. 자아공유하지 않을 때에도 미약하게나마 힘을 쓸 수 있기에 무대 위에서 열심히 노래할 수 있던 거지.”

눈물을 닦아낸 제니퍼 누나.

“그래서 오롯 이 아이에겐 뭐든지 다해주고 싶어. 내 끝노래를 시작의 노래로 만들어준 나의 뮤즈. 네가 끝노래로 내 팬이 되었다 했을 때 톱스타 제니퍼를 있게 해준 오롯이 생각나서 구구절절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왠지 미안.”

“아녜요. 좋아하는 아이돌과 얘기하다니 전 영광인걸요.”

“헤헤. 너도 오롯처럼 착한 애구나. 아 나 슬슬 공연하러 가야 되거든. 이따 저녁 먹을 땐 포탈 타고 올게. 마지막으로 너만 괜찮으면 사진 찍을래?”

“앗!! 부탁드립니다!!”

제니퍼 누나가 포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무대 대기실에 놔둔 자기 휴대전화 같다. 그걸로 투샷을 찍고 내게 손인사를 하며 자아공유를 해제하셨다.

“엇? 보라스타. 제니퍼 언니랑 얘기 잘 나눴어?”

“응…. 야 오롯아.”

“왜??”

“너 되게 좋은 애구나.”

“뭐야? 이제 알았어??”

의기양양해하는 오롯을 두고 거실로 내려간다. TV에서는 제니퍼 누나의 무대가 다시 시작되려 한다.



“아하핫 뭐야. 내가 아니라 오롯이 찍혔네.”

자아공유한 채로 사진을 찍어서 그런가 사진에는 내가 아닌 오롯이 블루스타 군과 함께 있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할까.”

이 행복한 삶을 다시 느끼게 해준 고마운 그 아이를 위해.

“여러분! 잘 쉬셨나요? 이제 2부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준 블루스타 군을 위해.

“첫 곡은 끝노래로 끊어볼게요!”


===
5번째 자아공유자, 천리 === “그럼 다녀올게.”

“집 잘 보고 있어 불륜스타!!”

하이퍼스타마트로 레노바티오 형과 오롯이 저녁 거리를 사러 나갔다. 친구 집에 놀러와서 혼자 있는 상황이 당황스럽긴 한데…. TV라도 볼까.

‘철컥 덜커덩’

??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두 사람이 벌써 돌아온 건 아닐 거고…. 두고 간 물건이라도 있는 걸까?

“형? 오롯? 지갑이라도 두고 나갔어요?”

“…누구야?”

현관에 있는 건 처음 보는 누나였다. 앙증맞게 모아 넘긴 앞머리. 적갈색 피부색에 작고 날카로운 눈. 눈 주위에 난 돌기 같은 검은 점. 가늘고 길게 뻗은 천체표면 피부. 한복 느낌의 복장. 그리고 무엇보다 독특한 건.

“혹시 도둑이야?”

그녀의 몸을 빙 둘러싼 흰 고리. 그 매끄럽고 아름다운 고리족의 상징이었다.



“안녕하세요. 천리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블루스타입니다. 오롯의 친구예요.”

“그렇군요.”

“….”

“….”

잠깐의 대화 뒤 적막이 흐른다. 어색하다. 오롯의 텔레파시 덕에 도둑이란 오해는 풀었지만, 천리 씨는 크게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다.

“천리 씨도 여기 사시나요?”

“네.”

“아 그럼 오롯의 자아공유자군요!”

“그렇죠.”

“….”

“….”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원래 말수가 적으신 편인가? 어떤 화제를 꺼내면 좋을까 생각하며 천리 씨를 바라본다. 볼 때마다 흰 고리가 눈에 자꾸 띈다. 고리족을 본 건 처음이다. 몸을 한 바퀴 감싸는 고리를 지니고 있는 게 고리족의 특징인데, 이 고리가 꽤나 신축성이 뛰어나서 밴드처럼 몸 원하는 곳에 걸 수 있다. 현관에서 만난 천리 씨는 어깨부터 골반까지 대각선으로 고리를 감으셨는데, 지금은 소파에 앉기 편하게 고리를 왼팔에 거셨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나요.”

“아! 죄송해요. 고리가 이뻐서.”

“그렇군요.”

“….”

“….”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그리고 침묵. 천리 씨는 이 조용한 분위기를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친해지고 싶은데.

“째액-!”

그때 새가 지저귀더니 창가에서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돌이버드였다. 천리 씨가 덤덤하게 창가로 가 창문을 열었다. 돌이버드가 집 안에 들어와 천리 씨의 어깨에 앉았다.

“이 새, 오롯이 기르는 새예요.”

창문을 닫으며 천리 씨가 말씀하셨다.

“전에 한 번 봤어요. 오롯이 소개해줬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이 새가 오롯의 위성이란 것도 아시겠네요.”

“위성?”

어깨에 앉은 돌이버드에게 간식을 주던 천리 씨가 눈을 깜빡이신다.

“단 한 명의 곁을 평생 맴도는 생물들요. 그들로부터 생명에 필요한 에너지를 받아 살아가죠. 그 대가로 자기가 지닌 독특한 힘을 공유하면서요.”

처음 듣는다. 들어 보면 우리 집 3돌이들과 비슷하긴 한데.

“쉽게 말하면 오롯의 기생충이에요.”

천리 씨의 매우 적나라한 덧붙임 설명.

“어, 그럼 돌이버드가 지닌 신기한 힘은 뭐죠?”

“텔레파시예요.”

“어라? 다들 그거 자아공유가 지닌 힘이라고 하시던데?”

“완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돌이버드가 기지국 역할을 해주는 덕에 가능한 거예요.”

간식을 다 먹은 돌이버드가 천리 씨의 뺨에 얼굴을 부빈다. 그러고는 문 밖으로 날아간다.

“오롯 방에 있는 자기 집에 가나 보네요.”

천리 씨는 살짝 아쉬운 듯 돌이버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본다.

“….”

“….”

“저기 천리 씨도 자아공유자죠? 그럼 오롯한테 무언가 힘을 받은 건가요?”

천리 씨도 자아공유자라면 무언가 능력이 있는 걸까?

“네. [삼형제별]이에요. ‘천리안’, ‘순간이동’, ‘고리화살’을 쓸 수 있어요.”

“????”

능력이 3개라는 건가? 아니면 3개를 쓸 수 있는 하나의 능력일까.

“천리안은 뭔지 아실 거예요. 멀리 있는 걸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죠. 순간이동은 좀 독특한데요. 여기 제 허리춤에 메단 이 방석에 앉으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요. 단 제 눈에 보이는 곳이 이동 범위 한계예요. 고리화살은… 보여드리는 게 빠를 거 같네요.”

천리 씨가 팔에 걸어놓았던 고리를 쫙쫙 늘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어라? 고리의 절반이 시위가 되더니 점점 활의 형상을 갖춰간다.

“고리족의 고리가 이런 거였어요?!”

“아뇨. 오롯과 자아공유해서 얻은 힘이에요. 자아공유하지 않은 현재 상태론 이렇게 활 모양을 내는 게 고작이에요. 실제 자아공유를 하면 화살도 쏠 수 있어요.”

“우와 진짜 신기한 악령이네요.”

“네.”

“….”

“….”

화제가 끝나고 다시 찾아온 조용함. 서로 말 없이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다 천리 씨가 입을 연다.

“블루스타 군은 혹시 시한부인가요?”

“???????????????”

“빨간 정도를 보아 하니 어림잡아 20년 정도 남았나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 걸까. 천리 씨 나름의 농담인가? 아니면 진지하게 내 건강을 걱정하시는 건가? 아니 시한부냐니 그건 무슨 안부 확인 인사야?

“죄송해요. 설명이 부족했네요.”

내 혼란을 의식한 듯 천리 씨가 부연 설명을 한다.

“저는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있어요. 죽음이 가까워진 사람일수록 빨갛게 보이거든요. 대부분은 병이나 노환으로 죽을 사람들이 빨갛게 보입니다.”

“그 말은 지금 제가 빨갛게 보인다는?”

“네.”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어라? 나 병원 가야 되는 거야?

“어떡하지? 아 그렇지만 한 달 전 학교서 건강검진 했을 때 별 문제 없다고 했는데? 그새 큰 병에 걸린 건가?!”

“…. 병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거나?”

“엥?”

“빨갛게 보이는 건 다른 경우도 있어요. 차에 치이기 직전의 사람은 순간 빨갛게 보입니다. 그 외에는 누군가 강력한 살의를 품고 있어서 죽음이 확실시된 경우예요.“

차갑게 나를 응시하는 천리 씨.

“건강에 문제는 없고, 더구나 20년 뒤에 예정된 사고사라니 가능성이 너무 낮네요. 가장 그럴듯한 건 20년 뒤 살해당한다는 건데.”

20년이면…. 분명 그때의 미래?

“하지만 20년 뒤에 살해라니 이것도 말이 안 되네요. 여하튼 앞으로 몸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별다른 악의를 갖고 말하신 건 아닐 거다. 그저 보이기 때문에 나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시겠지.

‘20년 뒤에…. 죽는다고 하면….’

‘띵~동~’

“야호~!! 문 열어줘~!! 양손에 짐이 한가득이라 문을 못열엉!!!”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 오롯과 레노 형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뛰어오신 건가?”

“우히히! 빨리 파티 하고 싶어서 제니퍼 언니의 가위를 빌렸지롱~!”

오롯이 ‘짠-!’ 하며 들이민 건 거대한 가위였다. 이 가위로 공간을 잘라 포탈을 열었단 것이겠지.

“그런데 파티?”

“저녁에 고기 먹자 한 거 기억나지? 이왕 먹을 거 파티를 열기로 했어! 자아공유자 전원 입주 축하 겸 오롯의 친구가 생긴 축하 겸!”

“”예~!”“

이럴 땐 참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다.

“일단 저희는 환영 파티 준비를 할까요?”

천리 씨가 레노바티오 형과 오롯에게 말한다.

“그래. 블루는 우리 집 구조나 물건 위치 모를 테니 저녁 준비 맡기기도 뭐하고…. 아 괜찮다면 마중 나가 줄 수 있어? 오늘 마지막 남은 자아공유자 한 명이 입주하거든.”

“아 오늘요?”

“응. 오늘 이 파티는 모든 자아공유자가 한 집에 입주한 걸 기념하는 파티거든. 노르망디는 집이 이반 제국에 있어서 같이 못 산대.”

레노 형이 혼잣말로 ‘나, 제니퍼, 천리, 스크랩, 홀랜드의 5명…. 노르망디 포함하면 자아공유자 6명 전원 맞네.’라며 손가락을 접었다.

“그 녀석의 이삿짐 대부분은 진작 방에 뒀는데. 몇몇 짐은 본인이 들고 오기로 했어. 혼자 들고 오가는 무거울 테니 가서 도와줄 수 있어?”

요 앞 10분 정도 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6번째 자아공유자 S-crap 편집

“안녕!!! 너구나 마중 오기로 한 사람이!! 하하하하 오롯이 자꾸 텔레파시를 보내서 누가 오나 기대했거든. 만나서 반가워 난 S-crap이라고 해. 스크랩!!!!”

“안녕하세요. 블루스타예요. 되게 활기차신 분이네요.”

스크랩 형은 매우 사교성 높고 활발한 사람이었다. 천리 씨와 마주한 직후라 대조된 건지 내가 여태 만난 사람 중 제일 시끌벅적한 분 같다. 아까까지 무언가 작업을 한 것인지 복장이 독특했다. 실험용 장갑, 가운, 작업화 그리고 고글까지. 고글에 귀여운 웃는 얼굴이 달린 게 매력 요소였다.

“어라? 꼬리가 달리셨네요. 2개나.”

이 형도 제니퍼 누나처럼 꼬리별족인 걸까.

“이거? 붙였어. 귀엽지??”

라며 자랑하듯 엉덩이를 흔드는 스크랩 형. 장난기가 가득했다.

“만나자마자 묻긴 뭐한데, 너 말이야 마우스스타 알아?”

“네. 같은 학교 후배인데요? 어떻게 아세요??”

“내가 걔 형이거든!!!”

마우스가 SSC출신이고 삼남매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근데 그 형이 이분일 줄이야.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형제라는 말이 믿겨지지 않는다.

“동생한테 얘기 자주 들었어. 잘 챙겨줘서 고마워.”

“아뇨 마우스가 제 동생과도 잘 지내줘서 저야말로 고맙죠.”

“크으으으!! 너 되게 착하구나!!”

“마우스의 형이라는 건 스크랩 형도 SSC 사람인가요?”

“응. SSC의 한 기업에서 개발팀 연구원이었는데 이번에 스타시티에 있는 회사 지부로 근무지가 바뀌었어! 그래서 레노 네 집으로 이사 온 거야.”

스크랩 형의 짐을 보니 무언가 연구에 쓰일 법한 것들도 보였다. 아마 이사 직전까지 일하시느라 미처 이삿짐에 넣지 못한 짐으로 보인다.

“어디 회사인가요?”

“마우스에게 못 들었어? 콰이퍼라고 첨단기술 연구하는 데야.”

“콰이퍼라면 되게 큰 기업 아니에요??? SSC는 물론 스타베리아를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대기업인데???”

“에이 콰이퍼는 대단하지만 난 별것 아냐. 나는 그곳 임원 아들이라 낙하산 인사인걸.”

낙하산이라는 말로 겸손을 표하시는 건지 아니면 낙하산이란 말을 당당히 해도 상관없는 정도로 유능하신지 잘 모르겠으나 이 형이 평범한 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여튼 오롯한테 들었는데 자아공유자들이랑 만났다매. 이야~ 자아공유자가 아닌데도 자아공유의 비밀을 공유하다니. 너 오롯이랑 진짜 친한가 보다!”

“아마 오롯이 자아공유하려고 저한테 영업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요.”

“에이! 자아공유하지도 않았는데 막 알려주진 않아!! 너랑 뭔가 있단 거겠지!! 예를 들면 좋아한다거나?”

“형 때립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스크랩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오롯의 집까지 걸어갔다. 마우스의 어릴 적 이야기, 스크랩·마우스·화살표 삼남매 이야기 등등. 그러다가 자아공유 이야기가 나왔다.

“스크랩 형도 자아공유자니까 신기한 능력이 있는 거죠?”

“난 [붙여넣기]라고 해서 스캔한 대상을 복제할 수 있어. 보여줄게. 자 저기 지나가는 이쁜 누나의 원피스를 스캔해볼게.”

세 손가락을 펴서 지나가던 누나의 옷을 지이잉 스캔하듯 위에서 아래로 훑으신다. 그러곤 이윽고.

“스크뢥!”

“?????”

스크랩 형이 아까 누나가 입던 것과 똑같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정말로 옷을 복제했구나

“형 역겨우니까 벗어요.”

“야!!! 보여달라매!!!!”

“원피스 입은 스크랩은 주문한 적 없는데요.”

“에이 알았어 알았어!!”

스크랩 형이 볼 맨 소리를 내곤 원래대로 돌아오셨다.

“그나저나 유용한 능력이네요. 이래저래 쓸모가 많을 거 같아요.”

“그렇지. 윈도쇼핑을 하다가 저거 괜찮은데 싶으면 곧바로 스캔해서 써보거든. 쓸데없는 지출을 안 해서 너무 좋아!!”

이건 절도라고 해야 될지 불법복제라고 해야 될지. 상당히 애매하다.

“그렇다고 해서 막 스캔할 수 있는 건 아냐. 눈앞에 있는 무생물만 돼. 모니터 너머로는 안 되더라.”

홈쇼핑 프로그램을 보다 스캔을 시도하는 스크랩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와. 이런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니 부러워요.”

“음 부러운가? 난 조금 생각이 달라.”

“네?”

스크랩 형이 웃으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악령은 저주라고 생각해.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해서 더럽게 물든 추악한 힘.”

“더럽다뇨? 이렇게 신기하고 대단한데.”

“음~ 그래? 내가 알기론 악령을 얻기 위해서 가문 단위로 아들딸들에게 인체실험을 하는 집안이 있거든? 자기네들이 가진 첨단기술력을 이용해서 더욱 희귀하고 유능한 능력을 배양하고 있대. 그 힘들이 모이면 가업을 더욱 번창할 수 있거든. 다시 말해 가업에 쓸 도구들을 사육하는 거야. 그 덕분에 그 집안은 성공해서 세계 아니 이 은하계에서도 알아주는 최고의 집안이 되었대.”

“혹시….”

“그 집안의 장남은 그게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 여겼어. 자기가 집안의 중요한 일원이자 후계자로서 가업을 잇는 걸 기뻐했지. 근데 말이야 이 친구가 알아챈 거야. 실은 자기한테는 형 누나가 잔뜩 있었는데 전부 사라졌단 걸 알았지. 집안의 어른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도 깨달았어. 충격적인 진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벌벌 떨던 장남은 가문에서 도망치기 위해 투신했어. 도망에 실패했지. 그런데 어라라? 떨어질 때 충격으로 어릴 적에 부모님한테 흠씬 혼난 기억을 잊어버렸대. 그렇게 기억상실에 걸렸는데 집안에서 준 특이한 능력까지 사라진 거야.”

스크랩 형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드디어 이 추악한 집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안도했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거야. 자기 동생들이 장남 대신 실험에 참가하게 됐어. 장남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무작정 어른들에게 달려갔지만 때는 늦었지. 이미 동생들은 장남 때문에 가문의 도구가 됐거든. 장남은 죽도록 후회했어. 자기만 도망치려 한 이기심의 최후를. 그때 그 장남을 도와준 이가 있었는데…”

“오롯이었군요.”

스크랩 형이 살짝 미소를 짓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이얀 요정이 나타나서 신비한 힘을 되찾게 도움을 주겠다는 거야. 장남은 바로 요정에게 힘을 달라고 부탁했고 이전에 지닌 힘보다 더 대단하고 멋진 힘을 받아 집안의 쓸모 있는 일품 도구가 되었어. 그리고 어른들에게 말했지. 무엇이든 할 테니 동생들을 저 멀리 스타랜드로 유학보내달라고. 어른들은 반대했지만 장남이 혼자서 수십 명 사람 분의 일을 하는 걸 보고 허락했어. 덕분에 동생들은 추악한 손아귀에서 벗어나 잘살 수 있게 됐대.”

어느새 오롯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래서 장남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대.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는 자기 동생을 잘 돌봐줘서 무지무지 고맙다고 말이야.”

“…형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전 그저….”

“어허!! 그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야. 내 얘기는 아니라구??”

첫 만남 때 본 밝고 티 없는 웃음이 만면에 퍼진 스크랩 형.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네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죠.”

“자. 어서 가자구! 나와 널 위한 고기 파티가 기다린다!!!!”

오늘 우리가 들고 온 무거운 짐들은 과연 그의 등에 짊어진 보이지 않는 짐만 할까.





2번째 자아공유자, 홀랜드 편집

고기를 다 먹고 난 후 소화할 겸 운동을 하자고 스크랩 형이 제안했다. 6명 모두 제니퍼 누나의 포탈을 타고 널따란 강당에 도착했다.

“여기 우리 기획사 강당인데. 맘대로 써도 된대.”

역시 톱 아이돌. 회사에서 지원하는 급이 다르다.

“그럼 뭐할래? 6명이니 3대3으로 나눠서 팀 게임 할까?”

레노바티오 형의 진행에 다들 뭘 할지 논의할 무렵.

“피구!!! 피구가 좋아!!!”

오롯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아니 피구라니. 20대 형 누나들이 좋아할 리가….

“호오? 피구 좋지. 힘의 차이를 보여줄게.”

“하하하하!! 제니퍼 너 되게 웃기다. 주제를 알라고!”

“이 [운수대통] 님이 나서면 공이 나를 피한다고?”

“흥. 면상에 맞혀줄게요.”

뭐야 이 사람들 피구 왜 이리 좋아해????

“그래. 그러면 ‘그 규칙’을 따를까?”

레노바티오 형이 비열하게 웃으며 모두를 응시한다.

“좋아요. 그게 공평하죠.”

천리 씨를 포함한 모두가 끄덕인다.

“자 그럼 자아공유자 피구를 시작한다!!!”



공으로 상대를 짓뭉개는 게 상품이라며 별다른 상품 없이 3대3 피구가 시작됐다. 팀은 남자팀 대 여자팀으로 진행됐다. 나와 레노 형 스크랩 형이 한 팀. 오롯과 천리 씨 제니퍼 누나가 한 팀이었다. 선공은 천리 씨가 가져갔다.

“시작할게요.”

나지막이 울리는 천리 씨의 목소리. 우선 공을 피하기 위해 경기장 뒤쪽으로 움직이는…?

천리 씨가 자기 몸에 감긴 고리를 주욱 늘리더니 활 형태로 만드신다. 어라? 아니 뭐 천리 씨의 능력이 신체의 고리를 활로 만든다곤 하는데 그걸 왜 지금? 내 의문은 무시하듯이 천리 씨가 공을 시위에 갖다대며 작디작은 입술을 움직였다.

“[삼형제별]”

“!!!!!!!”

슈와악이라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공이 내 머리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라? 빗나갔네요.”

뭐야 이거!!!!!!! 공을 무슨 화살처럼 쏘냐고!!!!!!!! 저 누나 일말의 고민 없이 내 얼굴에 공을 쐈다고!!!!! 내 [절대영역]이 아니었으면 얼굴에 구멍 났을 거야!! 홀스타2가 됐을 거라고!!

“뭐예요 이거!!!!!! 능력을 쓰면 어떡해요!!!!!!!!!”

너무 놀란 탓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어이!! 마우스 친구!!”

공을 주워온 스크랩 형이 양손에 공을 들고 내게 말했다. 응? 양손에 공?

“자아공유자 피구의 룰을 알려주지!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이기기 위해 악령을 쓸 것’!!”

그렇게 외치며 복제한 공까지 2개의 공을 던지셨다.

“[오방재가]”

“[삼형제별]”

“언니 나도!!”

제니퍼 누나는 포탈을, 천리 씨는 방석에 앉아 순간이동을, 오롯도 포탈을 타 각자 공을 피했다.

“쳇. 한 년은 보낼 줄 알았건만.”

“생각이 약아. 우리 스크랩 군.”

나는 서로에게 도발이 오가는 이 불온한 전장에 내던져진 것이다.

“미친. 이게 뭔 게임이야!!”

도망가려는 찰나

“핫!!! 죽어랏!!!!!”

제니퍼 누나가 포탈로 공을 던졌다. 그 공은 스크랩 형의 바로 앞에 나타나 명치를 가격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흐흥~! 이 정도는 해야지! 안 그러니?”

부들대는 스크랩 형. 2대 3 구도가 된다. 기어가며 상대팀 라인 밖에 겨우겨우 선 스크랩 형. 나도 공 맞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어 두려워진다.

“자 스크랩 패스!”

레노 형이 스크랩 형에게 공을 넘긴다.

“후우….”

스크랩 형이 잠시 심호흡하더니

“Ctrl+C Ctrl+V!!!!”

왼손에 공을 들고 오른손으로 복제한 공을 마구마구 던진다.

“앗!!!”

방석에 앉아 이리저리 피하던 천리 씨가 공 포화를 맞고 장렬히 아웃된다. 스크랩 형, 아까 명치 맞은 울분을 천리 씨한테 풀고 있다. 천리 씨는 이미 아웃했는데도 공을 너댓 번 더 맞히고서야 끝냈다. 그렇게 경기는 2대2 구도가 된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제니퍼 누나가 발밑에 포탈을 두더니 그곳으로 공을 떨어뜨린다. 엉? 공이 어디 갔지? 잽싸게 주위를 살피는 나와 레노 형. 하지만 공은 안 보인다.

“여기예요.”

라인 밖에 서 있던 천리 씨의 손에 있었다. 아뿔싸 설마 아군의 손 위로 포탈을 만든 건가!! 피할 틈도 없이 날아오는 천리 씨의 공 화살은 이번엔 레노 형에게 향했다. 아니 근데 레노 형 안 피하잖아?!

“형 피해요!!”

“하하 블루 너 내가 누구라구 생각하는 거야? 난 [운수대통]!!!! 최고의 운을 지닌 내가 공을 맞을 ㄹㅣㄴ5우아바바아어더도고다마마모도곡앜!!!!!!!!”

“형!!!!!!!!!!”

“아니 아무리 운이 좋아도 안 피하면 맞죠. 아까 못 맞힌 게 이상한 거예요.”

점잖게 말하는 천리 씨. 배를 맞고 나뒹구는 레노바티오 형은 한참이 지나서야 라인 밖으로 나갔다.

“좋아! 남은 건 볼록스타뿐이야!!!”

1대 2의 상황. 좋지 않다. 이대로 가면 진다. 하다못해 강적인 제니퍼 누나를 아웃시켜야 한다.

“하하! 끝이야!!”

제니퍼 누나가 또 포탈로 공을 던진다. ? 장! 날 맞히려는 건가!!!! 눈을 질끈 감았다.

“....”

“....”

“뭐야? 공 어디 갔지?”

어리둥절해하는 제니퍼 누나. 그때.

‘통’

““??”“

레노바티오 형이 통하고 던진 공에 누나가 아웃됐다.

“아니. 포탈이 내 손 위에서 열리길래.”

“뭐?! 뭔 소리야! 난 블루 군 명치에 포탈 열어서 꽂을 생각이었다고!”

아무래도 [절대영역] 탓에 포탈이 엉뚱한 데 열렸나보다. 더더구나 갈 곳 잃은 공은 운이 가장 좋은 레노바티오 형의 손 위로. 정말 어이없게 아웃된 제니퍼 누나는 레노 형의 멱살을 몇 번인가 잡아당기고 나서야 진정하고 라인 밖으로 나가셨다.

“후후후후! 이제 남은 건 우리 둘뿐이네 별로스타!!”

오롯이 공을 들곤 내게 가소롭단 표정을 보인다.

“응 그러게. 근데 긴장되진 않는다. 가볍게 이길 듯.”

왜냐하면 뒤에서 천리 씨와 제니퍼 누나가

“공 던지는 방법은 알죠?”

“오롯아!!! 블루 군의 공에 닿으면 안 돼!!”

엄청 안절부절못하며 오롯에게 필사적으로 룰을 알려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 날 못 믿겠어?”

“네.“

“응.”

즉답한 두 누나. 오롯은 삐진 듯 볼을 부풀리며 손을 위 아래로 흔든다.

“아 뭐야!!! 둘 다 너무해!! 홀랜드 아저씨한테 이를 거야!!!!”

그러고는 오롯의 몸이 희미해져 간다.

“자아공유?!”

홀랜드. 이 자아공유자 집에 사는 마지막 여섯 번째 인물이라고 들었다. 여섯 명의 자아공유자 중 노르망디란 사람을 제외하면 내가 유일하게 못 만난 사람. 오늘은 일이 바빠 일터에서 자고 온대서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우하하하하하하하!!!!”

경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오롯은 온데간데없고 웬 자줏빛 아저씨가 나타났다. 십자로 반짝이는 희번덕 뜬 눈에 배때기에 붙은 육각형. 그리고 전체적으로 산만한 아저씨였다.

“피구로 호오오온내 줄 애가 있다면서?”

형 누나들에게는 모습이 보이지 않겠지만 오롯의 말투와 분위기가 바뀐 걸 보고 홀랜드라는 사람임을 눈치챈 거 같다.

“뭐야 홀랜드 아재! 오늘 못 온다며!”

“어허! 우리 귀여운 딸이 부르는데 어떻게든 와야지!”

“블루 군! 조심해! 저 아저씨 인정사정 안 봐줘!”

아군이고 적이고 구별 없이 모두 나를 걱정해주기 시작한다. 저 아저씨 그렇게나 무서운 아저씨인가? 그때 홀랜드 아저씨가 배딱지의 빛나는 육각형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갑자기 팔에 울끈불끈 근육이 솟아났다.

“좋아. 근력 최애대로!!!!”

불끈해진 팔로 공을 슈아앙 던지셨다. 위험해! 아슬아슬하게 피했다만….

“으악!!”

라인 밖에서 공을 잡던 천리 씨도 너무 센 투구 때문에 놓치고 마셨다.

“아 이런. 너무 셌다.”

뒷머리를 긁적이는 홀랜드 아저씨.

“아저씨의 능력은 근력강화인가요?”

천리 씨가 놓쳐서 우리 팀 것이 된 공을 튀기며 여쭙는다. 시선을 끌어 기습한다는 내 의중을 눈치챈 스크랩 형과 레노바티오 형이 대열을 정비한다.

“뭐 그렇지?”

근육괴물을 내가 아웃시킬 수는 없다. 머얼리 공을 패스해 스크랩 형의 공 복제 연타로 승리를 노릴밖에.

“오오 어떻게 쓰는 거예요?”

“아아. 내 배에 있는 이 아름다운 배딱지 보이지? 이걸 누르면 돼.”

라고 친절히 설명해주는 사이 공을 멀리 던졌다. 좀 빠르게 던졌으니 잡기 힘들 거다. 좋아! 스크랩 형이 손을 뻗어 공을 받으려는데…

“근력수치 통상으로. 동체시력 강화. 주력(走力) 강화.”

배딱지를 딱따닥 치시고는 쏜살같이 달려서 공을 낚아챈다. 그것도 스크랩 형 바로 앞까지 날아온 공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공을 가져갔지?!

“다리근력을 강화하신 건가? 너무 빠른데.”

“음…. 조금 다르지? 주력을 올려서 빠르게 달리고 동체시력을 올려서 느리게 보이는 공을 잡은 거니까.”

아하. 이 아저씨도 천리 씨처럼 3개의 능력이 있나 보다. 근력, 주력, 동체시력의 3가지 말이다. 다시 근력을 올린 홀랜드 아저씨의 투구. 와 씨 겨우 피했다. 또다시 공을 놓치고 만 천리 씨.

“오 되게 잘 피하네. 막 날아오는 거 피하고 그러는 거 자주 했나 봐?”

“하하하. 점프점프가 특기거든요.”

다시 내게 돌아온 공. 이번에는 공을 잡자마자 바로 스크랩 형에게 넘겼다.

“좋아. 이겼다!!”

“하하하하!! Ctrl C Ctrl V!!!!”

스크랩 형이 복제신공을 보이며 공을 던진다.

“순발력 강화. 동체시력 강화.”

?!?!?! 이게 무슨 일이지. 스크랩 형이 던지는 수십 개의 공을 전부 피하고 있었다. 너무 잘 피하다 보니 오히려 반대편에 있던 레노 형이 공을 맞는다.

“뭐야!! 능력 3개 아니었어?! 순발력까지?”

“하아하~ 난 능력이 하나인걸?”

공을 요리조리 피하면서도 여유 있단 듯이 나와 대화도 한다.

“[육각원칙]. 6개의 능력치를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근력 주력 순발력 지력 동체시력 그리고 랜덤!! 어때?! 짱이지!!!”

이 정신없는 아저씨는 성격만큼이나 능력도 부산스러웠다. 사실상 6개의 능력이 아닌가? 이런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이겨!

“미안하다 불륜 꼬맹이. 우리 오롯이 널 좀 혼내주라고 해서 말야. 그럼 수고링!!”

이번엔 어느 정도 힘을 빼 던지는 홀랜드 아저씨.

‘퍽!!!!’

“으악!!!!”

하지만 힘을 뺐다고 해도 속도와 파워는 장난 아니었다. 결국 그 공에 맞아 아웃된 나.

“아즈아~!!!! 이겼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진심을 발휘해 이겨 신난 아저씨의 우승 소감을 뒤로 하며 자아공유자 피구 경기는 여자 팀의 승리로 끝났다.



“아야야야….”

“미안 미안. 괜찮아?”

피구 경기가 끝나고 홀랜드 아저씨가 치료해주셨다. 치료라고 해 봐야 구급상자를 열어 연고 따위를 바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야~~ 오롯의 친구래서 진심을 내 버렸지 뭐야!”

“뭡니까, 그 이상한 이유는.”

“하하하. 오롯이는 내 딸 같은 애거든.”

“혹시 그겁니까? 딸이 남자애를 집에 데려왔어!! 으아아!!! 아버지는 슬프다구!!! 같은?”

“오! 절반은 정답!!”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쑥스러우신 건지 머리를 긁적이며 와하하 웃으신다.

“오롯한테 제 얘기 들으셨나 보네요.”

“고럼! 자아공유를 하면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는 특이한 악령이라면서? 지금 내 모습도 보이잖아. 더더구나 오롯이 처음 사귄 친구잖아!”

“네? 처음 사귄 친구요?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그럼…?”

“오롯은 학교 다니는 거 이번이 처음이야.”

학교 다니는 게 처음이라고?

“어쩐지 애가 너무 바보 같더라고요.”

“아하하하. 그래. 그런 애니까 네가 좀 잘 돌봐줬으면 하는군. 학교에서 친구도 사귈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아, 내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네.”

“아니에요, 오롯이 친구가 생겨서 저한테서 멀어지면, 저야말로 좋은걸요.”

“와 너 할 말은 하는 성격이구나.”

대화를 하면서 어느덧 치료가 끝났다. 구급상자를 정리하시면서 홀랜드 아저씨가 말했다.

“오롯은 말야. 순박하고 착한 애야.”

오늘 레노바티오 형, 제니퍼 누나, 스크랩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곤경에 처한 모두를 오롯이 도운 것.

“왜 오롯은 형 누나를 도왔죠? 자아공유하기 위해서?”

나한테 계속 자아공유하자고 하는 것도 그렇고, 오롯은 뭘 위해서 그렇게 돕는 걸까. 내 질문을 들은 홀랜드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시더니

“이유 없어. 오롯 그 아이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까 돕는 거야.”

‘그 아이는 순수한 아이니까‘ 하고 아저씨가 덧붙여 말하신다.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사람을 돕는 게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 도움을 바랐기에 그 자리에 있던 오롯은 도와주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남을 돕는다라….”

다치고 지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뻗는 것. 쉬운 일 같아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오롯은 강한 아이겠지.

“그럼 혹시 홀랜드 아저씨한테도 오롯이?”

“응. 그렇지.”

잠시 창 밖을 응시하신다. 어느새 밤이 되어 별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난 말이지, 왕의 명령을 받고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어. 왕이 그 연구에 되게 관심이 많으셔서 나한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지. 돈이든, 물건이든, 심지어 인체실험을 할 꼬맹이든 말야.”

인체실험? 깜짝 놀란 내 표정을 눈치채신 아저씨는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잇는다.

“그 재료로 온 게 한 악마 여자아이였어. ‘악마’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양산하고 싶던 우리의 왕은 그 아이를 통해 연구가 성공하기를 바랐지. 그 꼬마 악마를 연구해서 인공악마실험을 성공하라고 말야. 뭐. 그때의 난 이래저래 뒤틀린 성격이어서 그 어린아이를 상대로 말 못할 실험을 자행했지. 자기 이름도 가족도 모르는 애를 데려다가 별의별 짓을 다했어. 지금 내 얘기를 듣는 네가 나를 때려죽여도 할 말 없을 정도의 일들을 말야.”

과거의 잘못에 밀려드는 후회와 분노 때문인지 홀랜드 아저씨는 있는 힘껏 주먹을 쥐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언갈 부수든, 자기 자신을 패든 하고 싶으셨겠지만 자아공유 중이라 참으신다.

“그런데 실험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정말 짜증났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괜히 그 꼬맹이한테 화풀이하고, 그럼에도 실험 성과는 나오지 않아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또 쌓였지. 하하 그러다가 결국 몸져누웠지. 평소 같았으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많이 지쳐 있던 건지 진짜로 죽을 것 같더군. 아 이제 끝인가 싶던 찰나 눈을 떴는데 몸이 매~우 개운한 거야! 며칠간 앓던 병마가 가시고 피로도 해소됐으니 그토록 기쁜 일은 없지. 기분이 너무 좋았어. 그런데 개운하게 샤워나 할까 하고 화장실에 간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을 목격했지.”

잠깐 뜸을 들인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 듯.

“거울에 비친 건 내가 아니라 오롯의 모습이었어.”

홀랜드 아저씨는 오롯과 그날 처음 자아공유를 했던 거다. 아파하는 홀랜드 아저씨를 대신해 자신이 아파하기 위해서. 건강한 자신의 몸을 홀랜드 아저씨에게 준 것이다. 정작 자기는 아픈 아저씨의 몸에서 끙끙 앓을 터인데도.

“참 나. 화나지 않냐? 고아를 데려다가 이름도 안 지어주고 괴롭히고 울리고 아프게 한 아저씨라고? 그런 쓰레기가 아파서 앓아 누웠어. 꼴좋다. 꼬시다. 벌받았다. 더 괴로워해라.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보통 아니야?”

아저씨를 계속 울분을 토해낸다.

“근데 그 꼬맹이는 말이지….”

‘아저씨가 괴로워 보이니까…. 도와주고 싶어서 자아공유했어요…. 죄송해요….’

“…라고 말했어! 내 몸속에 들어가서 앓아 누운 채 말야! 나는 정말이지!!! 인공악마실험을 위해 인강성이고 뭐고 다 집어 던졌는데!! 그 아이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아무 때나 칼에 찔려 죽을 심산으로 살았는데…. 그 아이는 날 찌르지 않았어. 오히려 날 안아주었다고!!”

케케묵은 무언가를 토해내듯 말한 홀랜드 아저씨는 한참간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겨우 진정을 하신 건지 구급상자를 제 위치에 두고 다시 말하셨다.

“…. 오롯이라는 이름은 내가 붙여준 거야. 모든 일이 끝나고, 오롯과 같이 탈출했을 때 내가 지어준 이름이지. 무슨 뜻인지 알아?”

“모자람 없이 온전하다는 뜻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 넌 그 이름을 내가 무슨 의도로 지어주었을 거 같아?”

어째서 홀랜드 아저씨는 오롯이라는 이름을 주었을까. 내가 오늘 들은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어감이 이뻐서 지어주었을 수도 있지만… 자아공유자 모두가 모여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동료애를 강조한 이름인가요?”

“아하하. 재밌네.”

홀랜드 아저씨는 자아공유를 해제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그 아이가 우리에게 손을 뻗어주었을 때. 그렇게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오롯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야.”

씨익 웃고는

“우리 오롯 잘 부탁한다.”

하며 사라지셨다. 그곳에 남은 건 피구에서 이겼다며 꺄르르 웃고 좋아하는 오롯이었다. 그저 바보 같고 순수하다고만 여겼던 오롯이었지만… 달빛 때문이었을까. 오늘 밤만은 이 아이가 참 다르게 보인다.

“야호! 이겼당~!! 역시 홀랜드 아저씨야!”

“오롯해진다…인가.”

천방지축이라고만 여겼던 오롯. 이 아이의 여러 일면을 알 수 있는 날이었다.



“야호!!! 브라스타! 어제는 재밌었어!”

“오 안녕.”

다음날 아침. 등굣길에서 오롯과 만났다. 음….

“뭐야, 뭘 그리 빤히 바라봐? 내가 그렇게 이뻐?”

“그래. 이쁘긴 하네.”

“후후훗!! 불륜도 결국 나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구나!! 큐트에서 나로 갈아타는 것도 시간 문제네!”

“아니, 그건 아냐. 난 똑똑한 여자 좋아해. 그러니 너랑은 절대 그런 일 안 일어날 거야.”

에에이!! 뭐야!!! 하고 떼를 쓰는 오롯. 계속 무시했더니 결국 체념하고 만다.

“아 맞다. 너 준비물 잘 챙겼지?”

“응!! 언니 오빠들이 챙겨줬어! 우리 오늘 현장체험학습 가는 거지? 기대된다! 그지?!”

“응. 분명 지아이디 산업단지라고 했나?”

“야호~!! 나나나 도착하면 제일 먼저 호랑이 볼 거야! 호랑이한테 가서 손! 해야지!”

“그건 동물원이지. 그리고 만약에 호랑이 보더라도 손! 같은 거 하지 마!! 너 다친다고!!”

“엥? 그런가? 하하항!”

자기는 아랑곳 않고 남에게 손을 뻗어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이 오지랖 넓은 바보. 이 바보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자아공유자, 노르망디 편집

“위험해.”

겨우 오롯을 안전한 곳으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개입했다. 자아공유자들이 모여있는, 더구나 홀랜드 교수까지 있는 그곳이라면 오롯은 당연히 안전할 것이다. 설사 아르마다가 오롯의 몸을 강탈해 난동을 부리더라도 홀랜드 교수라면 제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 녀석을 자아공유자들이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놈한텐 어떤 악령도 통하지 않아. 그렇다면 악령을 쓰지 않고 막을 수 있을까? 아니. 그놈의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 좋은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

“[절대영역]이라니. 오롯의 대피처로 고른 놈이 그딴 성가신 악령의 소유자일 줄이야.”

어둠속의 망령이 계획을 위해 보호해야 할 대상인 빌런스타. 오롯의 근처에 그놈이 있다면 네오 오빠가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는 성공. 현재까지 별다른 위협은 없다. 오롯이 일부러 어둠속의 망령을 만나러 가지 않는 한, 그들과 접촉해 오롯이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절대영역 때문에 나와 오롯의 관계가 깨질 수도 있어.”

그건 절대 안 된다. 오롯을 위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여태껏 아르마다의 정체를 잘 숨겨왔는데, 이제 와 들킬 순 없다.

“…잠시만.”

지금 스타시티에 자아공유자 모두가 정착했다. 아르마다 그 파괴광은 차치하더라도. 그만큼의 자아공유자가 모여있으면 어둠속의 망령이 습격해도 오롯은 안전하지 않을까? 어둠속의 망령에서 도주해 정착해 안전을 확보하기까지 고기방패로 준비해둔 블럭스타는 제 역할을 다한 거 아냐? 이제 오롯의 안전 확보는 자아공유자에게 맡기면 되잖아. 그놈은 필요 없어졌잖아?

“하… 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불륜스타를 죽이자.”

모든 것은 오롯을 위해서.



 ?? 번째 자아공유자, 아르마다 편집

‘철컹…. 철컹….’

인간전함을 묶은 두꺼운 쇠사슬이 쇳몸에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진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지하감옥.

그 누구도 이 남자가 한때 이반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빛의 침략부대 사령관이었다곤 상상조차 못할 거다.

뇌제 2세의 뜻, ‘빛으로 별을 덮겠노라.’ 그 말을 최전선에서 수행하며 가장 많은 전공을 올린 것이 바로 이 남자 아르마다였다.

그런 그가 충성을 바친 국가의 감옥에 갇힌 이유는 단 하나.

한 번의 반란.

그 반란으로 모든 명예를 잃고 이곳에 수감되었다.

“후우우우….”

그렇게 아르마다는 누구도 부르지 않는 이반 뇌궁의 지하 감옥에서 천천히 녹슬어간다.

png 파일 편집

블루스타의 점프점프
정식 시리즈 지구 편화성 편추석 특집새로운 친구 편할로윈 특집그녀에게 장미를성탄절 특집새해 특집비밀의 전학생수수께끼의 알1주년 특집, 붉은 대륙 루이 아드시간여행 1부—코발트블루스타와 시간여행단시간여행 2부—미래격전2주년 특집, 귀신섬 포베글리아오롯 편어둠속의 망령 편뇌제의 일곱 제후 1부—악령 편뇌제의 일곱 제후 2부—악마 편
제작 중단 마을특집마을특집 B&L (가제)
제작 취소 자아공유자 편
외전소설 머슬라스큐트 vs 오롯 vs 영그린청초와 매지스트 이야기스모커드자아공유자IF: 네오가 없는 어둠속의 망령세상이 버리고 배신한 자천리본풀이테니돌이의 테니테니
생일 특집 노르웨이스타의 점프점프랄랄라스타의 점프점프플래시날개의 날개로 비행비행버블스타의 보글보글독도스타의 애국애국아리스타의 점프점프 with 생일 특집랄랄라스타의 점프점프 2루미네스타의 점프점프 with 생일 특집Zeri의 점프점프 / 썬더의 파직파직무기의 점프점프the dead man의 점프점프강화스타면의 점프점프피컬의 점프점프비타의 점프점프달걀의 달걀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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