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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커드의 과거, 그리고 고통의 맛 식당 일원들의 스토리

전문 편집

“2점 차이로 스모커드는 불합격이구나. 아깝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는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그런데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험에서 내 앞에 몇 명이 더 있다는 이유로 떨어졌고, 선생님은 그걸 ‘아깝네’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선생님의 말이 너무나도 덤덤하고 건조한 탓일까. 내가 10년 가까이 쌓아온 인생의 모든 것이 ‘불합격’ 단 한 단어로 규정된 눈앞의 현실이 금방 와 닿지 않았다.

그날 동생들에게 저녁을 먹인 뒤 재우고 겨우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나서야

그날 밤 선생님에게 전화해 내가 갈 수 있는 직장이 있는지 묻고 나서야

스모커드 너는 사실상 소년가장이지만 너희를 버린 부모님은 부유해서 입사에 혜택이 없단 말을 듣고 나서야

경쟁에 밀린 나는 갈 수 있는 회사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공부를 못하는 나는 패배자라는 걸 알고 나서야

내게 닥친 현실을 깨달았고

자고 있는 동생들이 깰까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밤새 조용히 울었다.

경쟁.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명분으로 경쟁은 정당성을 갖추었다. 나는 이 경쟁주의 사회가 정말 좋았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내게 필요한 걸 얻을 수 있으니까. 그걸 깨달은 나는 중학교 때 불량서클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4년 동안 일하고 공부하며 동생들을 위해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그렇게 승자가 되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줄 알았다. 동생들에게는 돈 걱정 없이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난 승자가 아닌 패자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보다 공부 잘하는 승자는 존재했다.

이 경쟁주의 사회가 정말 싫다.

그렇게 세상 탓을 하며 

동생의 병원비를 위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손님으로 온 예전 불량서클 시절 선배를 만났고

나를 딱하게 여긴 선배가 옛정으로 ‘큰 돈벌이’를 권유했고

패자인 나는 그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큰 돈벌이’는 위험하고 나쁜 일이었지만

그 대가는 충분했고

아무 힘 없는 나는 현실에 굴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하고 어느덧 몇 년이 지났다.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 해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다.

“이봐, 스모커드. 너는 우리 보스 뵌 적 없지?”

“네 선배. 지금 출장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거래 건으로 화성에 계셨던 보스께서 돌아오셨다. 가서 인사드려.”

내가 조직에 들어왔을 당시 보스는 출장차 부재중이었다. 어떤 분이냐고 물을 때마다 벌벌 떨며 두려워하던 조직의 사람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떠는 그들이 들려주는 건 보스의 압도적인 강함과 잔학함에 대한 무용담. 그의 주먹질 한 방에 사람은 넝마짝이 되었다든가, 이 도시를 손아귀에 넣을 당시 상대 조직 간부들을 말 그대로 씹어서 먹었다든가. 도대체 이들이 그렇게나 두려워하는 그들의 보스는 어떤 자일까.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보스의 방 문을 두드린다.

“안녕하십니까 보스. 스모커드입니다.”

“새로 왔다는 꼬맹이인가. 들어와 봐.”

대관절 어떤 괴물이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이 조직의 모두가 무릎을 꿇은 ‘승자’는 어떤 인물인가. 문을 열고 보스를 알현한 순간.

“반갑다. 내가 네 보스인 퀘스티언 마크다.”

긴장은 허무로 바뀌었고 허무는 의아로 바뀌었다.

새까맣고 동글동글한 이형의 존재. 얼굴로 짐작되는 곳에는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많이 쳐 줘도 1m가 못되는 작고 검은 공. 조직의 모두가 말하던 무섭고 떠받들 만한 ‘승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너무 놀라 어처구니가 없던 난 감히 보스에게 질문했다.

“제가 듣기론 주먹으로 건물도 때려부수고 쇠도 씹어드신다고….”

“그래 보이나? 그냥 나이 든 아저씨일 뿐이다.”

내가 들은 소문이 무색하게 그는 무력했다.

그 후 몇 달간 그를 보좌하고 지켜보며 내가 가졌던 의아함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저 동네 건달의 우두머리 격으로, 스스로를 불량배대장이라 부른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펼쳐놓는 무용담들은 과장된 망상이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일화를 듣고 벌벌 떨며 듣기만 하는 조직의 패자들. 저 검은 공이 권력을 갖고 있단 이유만으로 알아서 굴복하는 패자들. 하지만 권력이 없기에 맞먹을 시도조차 못하는 나 자신까지. 그런 것들을 직접 느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하나.

불합리.

이런 보잘것없는 존재가 단순히 조직의 권력을 쥐었단 이유만으로 승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 분명 그 소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흩뿌린 헛소문이리라. 그 결과 지금 별다른 노력 없이 그 자리를 얻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며 얻고자 한 승자의 자리에 앉아서 아랫것들을 부린다. 그것을 가능케 한 건.

권력.

이 경쟁주의 사회에서 을들의 싸움에 개입하는 외부요소. 정의, 절차, 적법, 당위를 유린하여 승자를 만드는 그 힘. 저런 무능한 존재가 경쟁자들을 제치고 원하는 것을 얻게 하는 힘.

그래.

공부를 못했던 나에게, 경쟁에 밀렸던 나에게 필요한 건 그 무엇도 아닌

권력이었다.

네놈이 가진 그 권력을 빼앗기 위하여 나는 계속 숨 죽이며 기회를 엿볼 것이다.

나는 너와 달리 언제나 승자가 되기 위해 힘을 기르니까.

그것이 바로 나 스모커드니까.

그렇게 나는 스타시티를 장악한 조직폭력배 ‘블랙가드 패밀리’에서 그의 보좌관 위치까지 올랐다.

*이 이야기의 시점은 오롯 편 이후 어둠속의 망령 편 이전입니다.

“KJ, 자네가 알선한 마석 거래 건. 수락하겠다.”

매주 화요일마다 쉬는 고통의 맛 식당. 이 식당이 쉬는 이유는 단순히 가게 경영진들의 휴식을 위함이 아니다. 스타시티의 뒤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가 이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보스와 내가 이곳에 와 브로커 KJ를 만난 것도 그 일환이다.

“좋아, 블랙가드. 자네라면 승낙할 줄 알았지. 상대가 제시한 건 오늘 밤 8시. 장소는 이곳 지리를 잘 아는 그쪽이 정하라고 하더군.”

식탁에 앉아 거래를 진행하는 두 사람을 훑어본다. 장소를 어디로 할지 고심하는 보스와 그런 보스를 보며 낄낄낄 시종 웃는 얼굴인 KJ. 스타시티의 모든 뒷거래는 이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거물들이 거래를 주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타시티에서 그들의 흔적이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 블랙가드 패밀리를 포함해 여러 고객들은 혼란에 빠졌는데 그 와중 등장한 게 바로 이 KJ라는 남자였다. 이 남자는 이전에 거물들이 맡던 거래들을 다 꿰고 있음은 물론 더 대담하고 만족스러운 거래를 제시해 단 며칠 만에 스타시티의 모든 뒷거래를 장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가 거래 독점을 위해 기존의 브로커들을 다 제거하고 자리를 빼앗았다고 하는데, 그 거물들을 혼자서 전부 치우다니 말이 안 된다. 또 소문에는 그가 화성에서 쿠데타에 실패해 스타베리아로 행성밀입국 한 우주경찰의 레드코드 수배자라는데, 분명 삽시간에 이뤄진 그의 뒷거래 장악을 합리화하려는 시도에서 빚어진 헛소문일 것이다.

“장소는….”

거래 장소를 고민하는 보스 퀘스티언마크. 그는 내가 속한 블랙가드 패밀리의 보스로 이곳 스타시티를 장악한 뒷세계의 보스다. 왜 KJ가 시종일관 그를 블랙가드라 부르는지는 모른다. 아마 블랙가드 패밀리라는 조직명을 따 부르는 것이리라.

“남부의 버려진 빌딩은 어떻습니까.”

보스에게 제안한다. 사람도 없고 방범시설도 없다. 이번 마석 거래에는 최적이리라.

“안 된다오.”

멀찍이 뒤에 서 있던 풍검이란 사내가 말한다. 블랙가드 패밀리가 스타시티를 장악할 때 남부를 장악하던 집단의 대장인 풍검. 현재는 우리 패밀리에 세를 바치고 남부에서 겨우겨우 권세를 부지하는 중이다. 그런 주제에 토를 달다니.

“주제를 알고 떠들어라 풍….”

“그만해라 스모커드. 그의 뜻을 존중하라.”

“…알겠습니다.”

도대체 왜 저런 약자의 뜻을 존중하는 거지. 자기도 힘 없으면서 대장 노릇하고 다니니 그에게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건가. 하는 행동이 꼴사납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말에 따라야 한다. 참고 굴종하며 겨우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머지않아 그의 자리를 부수고 내가 그 권력을 차지할 기회가 올 때까지, 그때까지 견뎌내야 한다. 이런 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에 흐리멍텅한 물음표를 띄운 보스는 접선 장소를 북부의 뒷골목으로 정했고, 거래 성사를 축하하며 두 사람은 식사를 마저 진행한다. 그러던 중.

“야!!! 그레이!!!! 어서 튀어나와!!!!!”

다짜고짜 휴업 중인 가게 문을 열고 한 남성이 들이닥친다. 새까만 피부에 불같이 이글거리는 눈매, 그것만 봐도 장풍임을 알 수 있었다. 파이터성에서 스타베리아로 온 외행성인으로 허구한 날 이곳 셰프 그레이와 쌈박질을 벌이는 건달이다. 이렇게 종종 거래날에 난입해대는데, 이제는 브로커 KJ나 우리 보스나 신경 끄게 됐다.

“엥? 무슨 일이야 우리 쟈기~”

“그딴 호칭으로 부르지 마!!!”

평소처럼 치고받는 두 사람. 주방에서 나와 그의 주먹다짐을 하는 그는 이곳 고통의 맛 식당의 주방장 그레이로 식당을 개업하기 전에는 KJ의 부하였다느니, 혼자서 조직 하나에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느니, 화성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스타베리아로 잠적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앗!! 아얏얏!!! 하지마 여봉~!”

“아 닥쳐!! 그 징그러운 단어랑 말투 쓰지 마!!”

하지만 동네 건달인 장풍에게 얻어터지는 걸 보면, 소문은 믿을 게 못된다는 걸 다시금 깨우친다.

“하아. 오늘도 시끄럽네.”

포켓몬을 잡기 위해 계산대 위에 올라가 열심히 볼을 던지던 이 식당의 종업원 머즈가 싸움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다. KJ의 부하였던 연으로 이 식당에서 그레이와 일한다는데, 그레이에 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 중 KJ의 부하였단 건 사실인가보다.

‘땡그르르’

소란 속에서 보스가 포크를 떨어뜨린다. 물음표만 써진 얼굴은 무슨 표정인지 읽을 수가 없다.

“보스? 저 둘의 싸움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신 겁니까? 아 포크는 새로 가져오겠습니다.”

“….”

대답이 없다.

“보스?”

“뭐야. 너네 대장님 왜 그래?”

KJ도 이상을 눈치 챈 건지 식사를 중단한다.

“보스? 보스!”

“….”

의식을 잃은 건지 확인하기 위해 보스의 어깨-로 짐작되는 곳을- 흔든다. 그런데

‘흐물흐물….’

“!!”

보스가 액체처럼 변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보스?!”

“뭐야뭐야!! 이 녀석 왜 녹는 거야?!”

눈앞에서 일어난 믿기 힘든 상황. 항상 땡그란 구를 유지하던 보스의 신체가 죽어가는 슬라임처럼 꾸물꾸물 무너진다.

“어이쿠!! 실례!”

그때 장풍과 투닥이던 그레이가 도시락 통을 들고 와 흘러내리는 보스의 밑에 둔다. 눅진 물이 돼 흘러내리는 보스가 도시락 통에 가득 담긴다. 분홍색 도시락에 담긴 시꺼멓고 묽은 액체. 그 위에는 하얗게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그레이는 그 위에 케첩으로 ‘이뿐이’라는 낙서를 하고 도시락 뚜껑을 닫는다.

“완성! 블랙가드 도시락!”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보스가 녹아내렸고, 그런 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락으로 만들었다. 뭐지? 내 눈 앞에 일어난 지금 이 상황은 뭐냐고. 애초에 보스는 살아있는 건가? 의식은 있는 건가? 혼란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나에게 그레이는 보스-도시락-를 넘겼다.

“자, 보좌 씨. 여기 자네 대장이야!”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패밀리의 보스를 조직원이 보는 눈앞에서 녹이고 도시락 통에 담다니. 이건 패밀리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도 할 말이 없….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곧바로 뇌리에 스치는 말.

기회.

내가 여태껏 바라 마지않던 때가 온 것이 아닌가? 내가 무엇을 위해 뒷세계에 담근 몸을 빼지 않고 더 깊숙이 가라앉히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생각해라. 이자의 권력을 빼앗기 위해서. 원래 나의 것이었던 승자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다. 지금 그 기회가 찾아온 거다. 일순 기쁨에 차 얼굴에 속내가 드러날 뻔했으나 참았다. 그런 나의 검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는 계속 말한다.

“너무 걱정 마! 죽은 건 아냐! 단지 내가 만든 독을 먹고 신체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것일 뿐크어어어억!!!”

“어이 그레이!! 독을 먹이다니 제정신이냐!!!”

장풍이 중간에 말을 끊으며 그레이의 얼굴을 휘갈긴다. 그렇게 다시 투닥이는 두 사람. 이번엔 풍검까지 난입해 그레이를 혼낸다. 그 와중에 간간이 그레이는 ‘시간이 지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거야’라든가 ‘그 검은 놈이 예전부터 부탁한 일인데 이번에 서프라이즈로 준비했어!’라든지 내게 정보를 건넨다.

“…. 식사는 다 못 마쳤지만 이만 가 볼까? 자네 보스도 이 모양 이 꼴이니.”

“…그렇군요. 거래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KJ 님께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아냐. 나야 뭐 거래 중개한 것밖에 안 했는걸. 이 뒤는 당사자들끼리 잘 해 나가야지.”

짐을 챙겨 나갈 채비를 하던 그는 거래 결과를 상대에게 알리겠다며 마석 거래의 성사를 빌었다.

“….”

분홍색 도시락통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쳐 들고 계산을 한다. 아아. 지금 내 손에 이 인간이 무기력하게 들려있다니. 상하관계가 뒤바뀐 우월감에 웃음이 막 새어나오려 한다.

“저기… 죄송합니다. 우리 주방장님이… 그…. 댁의 보스를 그렇게….”

계산을 진행하던 머즈가 쭈뼛쭈뼛 내 눈치를 보며 말한다.

“우리 블랙가드 패밀리로서는 그쪽에 당장 선전포고를 할 사안입니다.”

보스 암살 시도로 읽힐 수 있는 이 일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으로 쉬 끝날 일이 아니다. 그래. 우선은 이렇게 엄포를 놓아야겠지.

“아앗! 그것만은 부디 참아주세요!!”

“보스께서 부탁했단 일이라고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온다고도 하니 우선은 지켜보겠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변명으로 그를 안심시킨다. 계속 새어나오려 하는 웃음을 참고 분노에 찬 연기를 하며 식당을 나온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식당을 뒤로한 채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보스가 담긴 도시락 통을 천천히 들고 차까지 간다. 마지막으로 차 뒷문을 열고.

하고 분홍색 통을 내던진다. 지금부턴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의 체면을 챙겨 줄 이유가 없다. 좌석에 나뒹구는 통을 뒤로한 채 운전석에 앉는다. 백미러를 통해 뒤집힌 보스를 지긋이 쳐다본다.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드디어 나의 손에 권력이 들어오는군.”

흉악한 웃음을 지으며 블랙가드 패밀리 아지트로 돌아간다.

블랙가드 패밀리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겉만 보면 대기업 본사다. 물론 안도 그렇다. 번듯한 기업 행세를 하며 우리는 도시 한복판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그리고 곧 내 것이 되겠지.’

서류가방 속에 도시락 통을 대충 쑤셔넣는다. 안에서 뒤섞이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이미 동지들에게는 신호를 보냈다. 조직의 썩은 곳을 솎아내기 위해 뜻을 모은 이들로 기회가 오면 언제든 조직을 뒤엎을 준비를 한 상태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도시락 통에 갇힌 무능한 검은 슬라임을 제거할 생각을 못한다.

‘어리석은 놈들. 지레 보스에 겁 먹어서 보스를 칠 생각조차 못하다니.’

그런 겁쟁이들이었기에 나는 동지들에게 보스를 구속했고 조만간 제거하겠다는 나의 작전을 밝히지 않았다. 분명 이놈들은 내 작전에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지들에게는 조만간 신호가 있을 거라고만 말해놓았다. 분명 놀라겠지. 그 신호가 보스 피살일 테니까.

“이봐 스모커드. 보스는 어디 계시지?”

아지트에 입구에 들어섰을 때, 나 혼자 돌아온 것을 보고 입구를 지키던 조직원이 내게 물었다.

“잠시 브로커와 다녀오실 곳이 있으시다더군.”

“뭐? 보스를 혼자 둔 거냐?”

“보스가 혼자 당할 인물이라 생각하나?.”

“…그런 분은 아니지.”

보스는 강하다 철썩같이 믿는 바보들. 덕분에 나야 쉬 속였다. 입구를 통과하고 보스의 방에 보스를 모시고 들어간다.

“도착했습니다. 보스.”

문을 열고 보스의 방에 들어간다. 정중앙에 놓인 와인빛의 불그스름한 고급 소파. 금박으로 장식된 그 소파의 옆에는 목재 탁자가 놓여있다. 권총과 술 등 보스의 물건이 놓여있다. 주변에는 책상 책장 도자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제가 자리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서류가방에서 분홍색 도시락 통을 꺼내 소파에 내던진다. 부딪힌 충격으로 뚜껑이 열려 검은 내용물이 힘없이 주르르 흘러나온다. 이윽고 소파는 물론 바닥이 검게 젖는다.

“아아. 보스.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제가 친히 자리에 앉혀드렸는데.”

씨익

“정말 무력하군요.”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하. 하하. 봐라. 내 앞에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저 꼴을. 자기가 가진 주제 넘은 권력에 취해서 아무 노력도 않은 이의 말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해서 웃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자. 보스. 제가 도와드려야겠군요.”

탁자 위에 있던 술병의 뚜껑을 열고 조르르 보스에게 붓는다. 그렇게 술에 흠뻑 젖은 보스를 내팽겨 둔 채 호주머니 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다.

‘칙’

담배에 불을 붙이고 검은 연기를 스읍 들이마신다. 매캐하고 뜨거운 연기가 목구멍을 타고 폐를 채운다. 무겁고 중독적인 먹구름이 피를 타고 온몸 구석구석에 도달해 흥분을 고조시킨다. 심장이 쿵쾅대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담배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거사가 코앞이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후우우....’

들이마셨던 연기를 천천히 목을 긁듯 내뱉는다.

“잘 가시오. 보스.”

‘칙’

술에 젖은 보스에게 불 켠 라이터를 내던졌다.

‘화르륵’

충분이 몸 곳곳에 스며들었을 알코올에 화마는 거침없이 뜨거운 손길을 내뻗는다. 그렇게 불길은 보스를 집어삼키며 점점 커졌고 그걸 감상하며 들이마시는 담배 연기는 일품이었다.

“드디어 전부 끝났군.”

막상 일을 치르고 나니 허망했다. 하지만 시작은 이제부터다. 나 스모커드의 보스 취임에 불만 가질 놈들을 미리 제거해야겠지. 활활 타오르는 보스를 보며 정장 안쪽의 총을 손볼 무렵.

“나를 죽이려면 좀 더 확실한 수를 써야지.”

!!!

차분하고 중압감 있는 보스의 목소리. 당황해 급히 불속을 노려본다.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생각한 순간

“크어억!!”

불속에서 검고 거대한 손이 뻗어 나오며 내 목을 움켜쥐었다.

“큭!! 흐극!!”

무식하게 센 힘으로 내 멱살을 쥐어잡은 팔이 점점 위로 올라간다. 그와 동시에 불길 속에서도 무언가 검은 형상이 점점 솟아오른다.

“내가 든 통을 차 안에 내던지길래 무슨 짓을 할 건지 잠자코 지켜보았다만 반란인가. 나에게 대드는 놈을 보는 건 스타시티 통합 이후 처음이군.”

압도적인 힘.

날 움켜쥐고 들어올린 팔을 보며 든 그 생각은 이내 공포로 바뀐다.

“좋은 걸 알려주마. 첫째. 네가 죽이는데 실패한 나의 이름은 후들럼 블랙가드. 너의 보스다.”

내가 알던 보스가 아닌 처음 보는 모습. 불에서 걸어나오는 그는 검은 공이 아닌 사람의 형상이었다. 2미터는 족히 넘는 거구. 크고 두꺼운 근육에 뒤덮인 새까만 몸. 그리고 눈코입 대신 얼굴에 자리잡은 하얀 물음표. 내가 알던 보스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생김새는 판이하다.

“크흑!!”

“둘째. 방금 먹은 그레이의 해독제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자기를 문 강아지를 잡아 들어올리고 응시하는 듯한 보스. 날 쳐다보는 듯한 하얀 물음표가 웃는 이모티콘으로 바뀐다.

“마지막. 난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종족이라 불에 타죽지 않는다.”

말을 마치자마자 나를 있는 힘껏 벽으로 집어던진다.

“크헉”

쾅하는 소리와 동시에 콘크리트 벽에 내던져진다. 온몸의 근육과 뼈가 터지는 감각. 삐 소리가 나며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소리가 웅웅 울린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아랑곳 않는다.

“나약하군.”

정신을 못 차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며 숨을 고르던 내 위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생각하던 때

‘쿵!!!’

맞은편 벽이 무너지며 누군가 들어왔다.

“어이! 물음표! 몸은 괜찮아? 서프라이즈로 해독제 줘봤는데 어때?”

그레이. 아까 그 식당의 주방장이었다. 어...? 무너진 벽 너머로 하늘이 보인다. 그래. 여긴 빌딩 꼭대기.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지?

“효과는 아주 탁월했다. 다만 감사는 표하지 않으마. 네가 내 건물을 부순 탓에 화가 났거든.”

내가 보스를 무례하게 취급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 일은 화나지도 않은 듯하다.

“미안미안. 1층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점프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더라구. 입구에서 내가 못 들어오게 막아대잖아!”

1층에서 여기까지 점프했다고? 말도 안 돼.

“창문만 부수려다 힘조절에 실패해서 벽을 부쉈단 변명이 통할 거라 생각하나? 솔직하게 말하도록. 해독제를 그냥 주는 게 싫어서 나한테 시비 걸 구실로 벽을 부수었다고 말이다.”

아까까지 분명 손이었던 보스의 오른팔이 철퇴 모양으로 바뀌었다. 마치 검은 슬라임 같다.

“애초에 화성에서 후들럼 블랙가드인 이몸에게 독을 먹여 신체유지를 못하게 만든 건 그레이 네놈이다. 네놈이 나에게 해독제를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스가 내게서 시선을 버리고 그레이를 응시한다. 마침 조금씩 몸에 힘이 들어가고 감각이 돌아오자 내 손에 쥐인 권총이 인식된다. 정장 안에서 꺼냈던 권총. 지금 보스가 방심한 사이 쏴죽여야 한다.

‘철컥 탕!’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마자 손을 움직여 검은 야수를 쏘았다. 이번엔 죽인다.

‘텁’

“...?”

그 괴물은 내가 쏜 총알을 손가락 두 개로 잡았다.

“기회가 보이자마자 날 죽이려 한 기개는 높이 살 만하군.”

다시 날 쳐다보던 그는 손가락으로 낚아챈 총알을 힘으로 으스러뜨리며 말한다.

“하지만 날 죽이고 싶다면 나보다 강한 총을 쓰도록.”

....

“어이! 물음표! 이제 와서 화성 적 일을 꺼내는 거야?”

“당연하다. 너와의 악연이 시작된 때니까.”

날아가는 총알을 잡았다. 그리고 가루냈다.

“VIP인 화성 국방부장관께서 마석 거래를 원하셨기에 이몸 후들럼 블랙가드가 친히 화성까지 갔지. 거기서 KJ의 부하인 너와 마석 거래를 하려 했다만.”

“하하하하. 내가 KJ를 배신하고 마석을 빼돌리기 위해 너한테 독 탄 스무디를 줬지. 덕분에 넌 앙증맞은 축구공이 되었고 난 마즈 다이아를 무턱대고 들고 갔다가 그 돌에 정신을 빼앗겨 온갖 나쁜 짓을 했지.”

자기를 죽이려면 자기보다 강한 총을 쓰라고? 이제야 이해된다. 보스만 보면 벌벌 떨고 설설 기던 조직원들. 이놈들은 알고 있던 거다. 후들럼 블랙가드가 지닌 압도적인 강함을.

“이몸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화성에 데리고 온 패밀리를 대동해 네놈을 으깨버리려 했지만 이미 모두 화성 밖으로 도망친 뒤더군.”

“야. 나도 놀랐어! 죽은 줄 알았던 슬라임 아저씨가 꼬꼬마가 되어서 식당에 찾아왔으니까!”

아무 노력이나 능력 없이 윗자리에 앉은 게 아니었다. 그가 지닌 압도적인 강함이 그를 그 자리에 앉힌 거였다.

“그날 바로 네놈을 죽이려 했지만 우주경찰이랑 스타랜드 정보부가 중재해서 실패했지.”

“아아 그랬지. 그날 나도 널 끝장 낼 수 있었는데 머즈랑 풍검이 막았잖아. 나도 놀랐어! 설마 그 두 사람이 각각 KJ와 버려진 빌딩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첩보요원이었다니!”

“우리가 싸우면 큰 소란이 날 거라며 강제로 계약을 맺게 했지. 고통의 맛 식당을 중심으로 모인 각 세력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나와 너는 물론 KJ와 장풍 심지어 머즈와 풍검까지 불가침 계약을 맺었다. 그날 이후 계속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보답을 할 때가 왔군!”

날 쥐어 패던 주먹이 철퇴가 되어 그레이의 얼굴로 부웅 날아간다.

“이 후들럼 블랙가드! 그대에게 죽음을 선물하마!!”

그 철퇴를 한 손으로 막고. 아니 일부러 손에 맞아 피를 흘리며 사악한 웃음을 짓는 그레이.

“자. 이걸로 선제공격 한 건 너다. 먼저 불가침 계약을 위반한 건 그쪽이야.”

곧바로 눈앞에서 두 남자의 혈투가 시작된다.

‘뭐야... 이 괴물들은....’

보스뿐만 아니라 그레이라는 일개 주방장도 터무니없이 강했다. 보스가 압도적인 무력으로 찍어누르고 압박하는 방식이라면 그레이는 빠른 판단과 쏜살같은 행동으로 전투에서 우위를 계속 점해가는 방식이었다. 신체를 계속 변형해 가며 위협하는 보스. 철퇴 칼날 망치 온갖 무기로 그레이를 공격해간다. 그런 보스의 공격들을 막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면서 가볍게 한 방 두 방 먹이는 그레이. 가볍게 치는 건데도 울려퍼지는 둔탁한 타격음으로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끝나지 않는다.’

괴물들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지 못했다. 압도되었다. 난 정말 저런 괴물을 이길 수 있다 생각해 건가? 저것이 권력을 가진 자의 힘인가? 저런 능력을 타고났기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승자가 될 수 있던 건가?

‘그에 반해 나는 아무 힘도 없다.’

이 싸움은 적어도 반나절은 계속될 거라 확신하던 와중 내가 기대고 있던 벽이 부서졌다.

“야호. 거기 두 사람 계약 위반이야.”

브로커 KJ. 바주카포로 벽을 부순 건가? KJ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다. 장풍에 머즈 그리고 풍검까지 고통의 맛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다.

“자, 자폭 장치를 가동해 상관인 나를 배신하고 스타랜드에 잠입했다가 나와 다시 만난 우리 머즈 요원 님! 분부대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만 비꼬시죠. 저라고 이곳에서 당신과 해후할 줄 알았습니까. 당연히 감옥에서 죗값을 치를 테니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설마 스타랜드로 도피해서 뒷세계 브로커가 됐을 줄은....”

“하하하하하. 이야 역시 권력이란 건 좋네요. 물론 국방부장관 시절이 더 좋지만 온갖 뒷거래를 도맡는 지금의 권력도 좋아요~ 덕분에 우리 뒤통수 잘 때리는 머즈 요원 님께서 저를 함부로 못 건드시잖야요?”

“야 KJ 시끄러워. 떳떳하지 못한 범죄자 주제에. 어이 머즈, 풍검. 저놈들 제압하면 되지?”

“응~ 화나면 주먹부터 나가는 폭햄범~ 용케 무술가에서 파문 안 당했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뭐지? 내가 헛소문으로 치부했던 것들이 전부 사실이었나? 아니 소문보다 더 강한 놈들이 아닌가?

“계약에 따라 우리 안에 분쟁이 일어나면 나머지가 그들을 제압해야 하오. 개인 간 싸움에서 세력 간 싸움으로 번지면 걷잡을 수 없으니 말이오.”

“오케이. 그레이는 내가 막는다.”

“소인이 블랙가드를 맡겠소.”

곧바로 뛰쳐나가 괴물의 싸움에 끼어든다. 저런 데 제 발로 들어가다니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두 사람이 괴물을 막고 서 있었다. 저 둘도 그들에 필적하는 괴물인가?

“참 나 풍검. 버려진 빌딩에 자기가 신변보호 중인 외계인이 있다고 거기서의 거래를 매번 막다니. 봐봐 우리 배신자 머즈 요원님! 풍검이 오늘 우리 거래에 안 끼어들었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거라구!”

“억지예요. 하아.... 막는 건 저 두 사람에게 맡기고 저는 아래로 내려가서 블랙가드 패밀리를 막을게요.”

“싫어! 내가 내려갈래.”

“KJ 당신 내려가서 싸우고 싶어서 그런 거죠?? 절대 안 됩니다. 전 내려가서 그들과 대화로 이번 아지트 무단침입 및 블랙가드와 싸운 건에 대해 협상할 거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머즈가 내려간다. 눈앞에서 싸우는 넷을 제외하면 이제 남은 건 나와 KJ 둘뿐이다.

“그래서. 안 도망치고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힘이 풀려 앉아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KJ가 말했다.

“도망이라니...?”

“아니. 너 겁나 약하잖아. 식당에서 나갈 땐 블랙가드를 금새 처리할 것처럼 나가길래 강한 놈인가 했더니. 지금은 겁먹어서 다리에 힘 풀려 주저앉아 있잖아.”

정곡을 찔렸다.

“아. 일어서질 못하는 거구나. 그럼 두 팔로 기어나가.”

욱해서 웃기지 말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너같이 약한 놈한테는 용건 없으니까 어서 도망가라고. 아 쪽 팔려 할 필요 없어. 설마 약해 빠진 주제에 나한테 소리치려 한 건 아니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 패자가 주제도 모르네. 아 그래도 오늘 거래엔 나와라? 보스가 저 꼬라지니까 너라도 대신 나갸야지.”

난 기백에 압도되어. 아니 겁먹어서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북부 뒷골목 거래 장소. 아까의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터무니없이 강한 힘 앞에서 무력해진 자신. 그걸 내려다보는 승자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꼴사납게 도망친 자기자신. 여태껏 큰소리 떵떵 치면서 승자들을 우습게 본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분하다. 약하고 멍청했던 내가. 이런 약자는 절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이 세상이. 그리고 경쟁에서 이겨 권력을 얻은 놈들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났다.

“젠장!!!”

분을 삭이지 못하고 주먹을 계속 쾅쾅 벽에 찧는다. 힘이 없어서 경쟁에서 젔다.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권력을 통한 편법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근데 그 권력을 얻으려면 힘이 필요했다. 결국 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밑바닥 패자 인생을 평생 떠돌며 매일매일 승자를 우러러보기만 하다가 조용히 죽어가겠지. 분하다. 하지만 겁난다. 후들럼 블랙가드의 압도적인 강함이. 날 벌레 보듯 한 KJ의 시선이. 난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 경쟁주의 사회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정해져 있던 거다. 난 암만 발버둥쳐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패배자였다.

“큭... 크하하하... 웃기는군. 이 나는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건가.”

자조한다. 그때.

“아니 벗어날 수 있다. 스모커드.”

“?!?!!”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본다. 노란색. 파란 눈에 붉은 눈동자. 매끄러운 금속 재질의 외알안경. 거기에 검은 망토를 둘러싼 정장을 입은 사내. 나와 나이 차이는 얼마 안 나는 앳된 얼굴이지만 흘러나오는 기품만 봐도 그가 나보다 열 살은 족히 연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근엄하면서도 사려 깊은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다.

“누굽니까.”

“누구냐니. 오늘 마석 거래 건으로 왔다만.”

그제야 깨닫고 시간을 확인한다. 정확히 약속 시간이었다.

“이거라도 쓰게.”

손수건을 건네받는다. 왜 주는 건가 하고 내 손을 보았다. 벽을 내리 찧다 상처가 나 피가 줄줄 흐른다. 눈치 못 챘다.

“.... 고맙습니다.”

손수건으로 상처를 감싼다. 처치가 끝나자 상대가 용건을 말한다.

“내 이름은 네오다. 원래는 수행비서가 오기로 했다만 건이 건인지라 내가 직접 왔다. 마석 중개업자인 너희 조직에게 마석을 넘기러 왔다.”

네오...라면 지아이디 사람이던가. 역시 권력 위에서 돈을 잘 버는 사람에겐 모든 재화가 모이는군.

“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 얘기할 건 조금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그대가 겪은 일들은 미리 보았거든. 지금 그대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다.”

미리 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부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떠넘기다 결국 버렸고. 장남인 너는 동생들을 위해 불량서클 활동을 청산하고 열심히 살았지. 공부하랴 일하랴 정말 바쁘게 살았지만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러다 서클 시절 선배와 만났고 그 선배의 도움으로 블랙가드 패밀리에 가입. 범죄를 저지르지만 돈은 많이 벌었기에 참고 살아왔지만, 자기 보스가 보잘것없는 인물임에 분노와 열등을 느끼고 반란을 모의. 그러나 그 보스가 숨겨두었던 힘을 해방하며 실패.”

이 남자 뭐지. 내 정보를 어디서 구한 거냐. 아니. 오늘 있던 일도 알 정도면 감시하고 있던 건가.

“왜 저를 감시했습니까.”

“아 오해를 샀군. 감시한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보였을 뿐이지.”

나를 진정시킨다. 고귀한 동작과 억양으로 내 경계심을 잠재우던 그는 본론을 꺼낸다.

“정말 잔혹한 인생을 살아왔더군. 미처 알지 못해 도움을 못 준 건 사과하마. 그대가 신분상승에 목숨을 거는 것도 이해가 갑다. 그런 그대에게 하나 묻겠다. 스모커드. 그대는 권력을 얻고 싶은가?”

“그거야 당연...”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

세상을 바꾼다? 이 남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일순 진지해진 내 표정을 보고 네오라는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오늘 그대를 찾아온 건 이 용건 때문이다. 그대라면 마석이 뭔지 알겠지.”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보석으로 악마가 저주를 내린다는 속설이 있는 기분 나쁜 돌이지 않습니까.”

“맞아. 그런 견해도 있지. 여하튼 이 마석이란 건 자연물이야.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그도 그럴 게 악마가 만든 보석이니까. 하찮은 존재가 감히 만들 순 없었다.”

없‘었’다? 이 남자 설마

“인공마석을 생산했습니까?”

“그래. 맞아. 역시 머리가 좋아. 괜히 미래에 제후가 된 게 아니군.”

“미래 놀이는 그만 됐습니다. 여하튼 마석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는 겁니까?”

텀을 두고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원하는 힘을 담을 수 있는 이 인공마석은 그 위력도 상당하다. 연구를 거듭하면 신체의 상태변환까지 맘대로 일으킬 수 있을 거다.”

그가 꺼낸 마석은 노란 겉 테두리에 안에는 무지갯빛 오팔이 정갈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아직은 힘이 약하다. 액체를 기체로 만들 순 있지만 아직 고체는 힘들더군. 애연가인 그대에게 어울린다 생각한다.”

기체를 다루는 마석이란 거겠지.

“이 거래를 스모커드 그대와 독점계약 맺고 싶다. 오직 그대에게만 상품을 제공하지. 해 보겠는가?”

그 비싼 돌덩이를 어떻게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진짜라면 이건 엄청난 거래 건이다. 독점한다면 상상도 못할 금액을 손에 쥘 것이다. 더구나 나는 반란 혐의로 조직에서 쫓겨날 것이다. 이 거래는 조직에 알리지 않고 나 혼자 맡아 나의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거다. 분명 권력도 뒤따라올 것이다. 나에게 줄을 대는 인간이든 내가 만든 돈과 독점의 권력이든 말이다.

하지만

‘그대는 권력을 얻고 싶은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이 남자가 한 말이 계속 멤돈다. 내가 그저 권력을 얻고 싶은 거라면 여기서 그의 제안을 수락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괜찮은가? 애초에 내가 권력을 얻고 싶던 이유는 뭐지? 동생들에게 돈 걱정시키지 않기 위하여?? 무능한 보스에게 열등감을 느껴서?? 아니. 아니다.

이 경쟁주의 사회에 종언을 고하기 위해서다.

권력을 얻고 더 큰 권력을 얻어 이 경쟁주의 사회를 부순다. 그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나를 움직이던 동기가 아니었는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래. 나는. 너에게서 마석을 받아 이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대답한다. 독점거래를 하겠냐는 물음에 맞는 답변은 아니다. 동문서답이다. 하지만 네오는 나의 의중을 이해하곤 가볍게 미소짓는다.

“그래. 하지만 내가 원한 답변과는 다르다. 내가 본 미래에서의 그대는 이런 답변을 하지 않았거든. 그대는 좀 더.... 나에게 무례해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권력과 힘을 얻어 나와 대등한 제후가 될 테니 말이다.”

나도 미소가 지어진다. 좋아. 그렇게나 원한다면 말해주지. 내 심경을 꿴 듯 네오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를 노려보며 거만하게 손을 뻗는다.

“나 스모커드에게 마석을 바쳐라.”

그렇게 7인의 개혁자 중 한 명이 탄생했다.

블루스타의 점프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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